왜 열심히 일해도 잘살기 힘들까?

학생들에게 희망 진로를 물어보면 법대, 의대가 가장 많다. 왜 학생들은 법학과 의술을 공부하려 할까? 답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출세하기 쉬울 뿐더러,돈도 많이 벌기 때문이다.
질문을 바꾸어, 가장 원하는 공부를 물어보자. 이때의 답은 앞서와 다르다. 음악, 미술에서 문학, 역사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희망은 다양하게 벌어질 테다. 세상살이의 버거움은 하고 싶은 공부와 해야 할공부를 갈라놓는다.
대부분은 하고 싶은 공부보다 해야 하는 공부를 택해야 한다. 주변에 널린 ‘워킹 푸어’(working poor, 일을 하는데도 가난한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현실에서는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는 일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우리는 돈 있는 자가 더 부자가 되는 시대를 산다.
현실을 바꾸려면, “왜 열심히 일해도 잘살기 힘들까?”라는 물음부터 던져야 한다. 그럼에도 좀처럼 이런 질문이 주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경쟁에서 이길까?”를 묻게 할 뿐이다. 우리의 미래가 답이 없어 보이는 이유다. 병을 고치려면 쓴 약을 피해서는 안된다.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의 가장 아픈 부분을 철저하게 짚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해법도 나오지 않겠는가.
이 점에서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는 무척 반가운 책이다. 오랫동안 금서(禁書)였던 마르크스의 『자본』이 ‘청소년용 고전(古典)’으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예전에 『자본』은 ‘자본주의 사회를 뒤엎으려는 책’으로 읽혔다. 이제, 『자본』은 ‘자본주의를 치료하는 의학서’라는 꼬리표를 붙여도 괜찮을 듯싶다.
 

책의 내용을 따라가 보자. 우리는 왜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까? 마르크스의 설명은 간단하다. 생산과 소비가 나뉘었기 때문이다. 내가 쓸 물건을 내가 스스로 만들면 어떨까? 옛 농촌 사회에서처럼 말이다. 이 때, 가난은 순전히 내 탓이다. 내가 일을 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환을 통해 물자를 얻는 상황에서는 가난이 꼭 내 탓만은 아니다.
교환의 묘미는 이득을 많이 챙기는 데 있다. 사는 사람은 지불할 돈보다 더 많은 몫을 챙기려 한다.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못되는 상황’은 그래서 생긴다.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라면, 고용하는 이들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임금을 매기곤 한다. 봉급은 대개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 즉 최저 생계비 언저리까지 떨어져 버린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차이도 점점 벌어진다. 최소한의 봉급 외에 나머지는 모두 가진 자의 주머니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왜 이렇듯 손해 보는 ‘교환’을 할까?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종잣돈도 가게도 공장 설비도 없다면, 이를 가진 사람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있는 이들이 돈을 번다. 이자 수입, 임대 소득 등등 돈이 돈을 버는 셈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재테크에 목을 맨다.
그러나 강신준 교수는 재테크란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부동산이나 금융에 투자해서 번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노동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투자 수익, 임대 수익 등으로 가진 자들의 돈은 점점 늘어난다. 이는 돈을 벌기 위한 돈, 즉 ‘자본’이 된다. 그런데 자본은 어딘가에 투자가 될 때만 이득을 낳는다. 그러나 시장은 무한히 늘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물건은 일정하기 마련이다. 상품을 팔기 위해 사람들의 욕구를 새롭게 틔우는 데도 한계가 있다. 자본은 계속해서 쌓여가지만, 이를 굴릴만한 시장은 그만큼 빠르게 늘어나지 않는다.
그 결과는 공황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황이 거듭해서 나타나곤 한다. 달아오르던 부동산과 금융 시장은 한순간에 꺼져 버린다. 피땀 흘려 모은 노동자들의 ‘종잣돈’도 순식간에 날아간다. 공황을 겪을 때마다, 가난한 사람은 더욱 늘어나고  황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이렇게 될 때 세상은 어디로 흘러갈까?
강신준 교수는 『자본』이 제시하는 새로운 사회로 가는 길을 이렇게 정리한다. “개미 자신이 베짱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베짱이를 개미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개미란 노동자, 베짱이란 가진 자, 즉 자본가를 뜻한다. 돈이 돈을 벌어주는 사회보다, 열심히 일하는 자가 부유해지고 잘사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자본』이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문제는 지금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자본』이 오랫동안 읽혔다. 노동자들의 정당이나 시민단체가 뿌리 내린 데는 『자본』의 힘도 컸단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떤가?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사회 조직은 아직도 약하다. 분노의 목소리만 클 뿐, 이를 차분히 풀어나갈 이론이나 정책은 희미하다. 강신준 교수가 『자본』을 널리 퍼뜨려야 할 책으로 꼽는 이유다.
 
『자본』의 청소년용 해설서가 나왔다는 사실은 무척 반갑다. 게다가 강신준 교수의 『자본』 해설은 친절하고 재미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한다. 『자본』은 지금의 자본주의 위기를 헤쳐 가야 할 ‘미래 인재’들이 들어가야 할 호랑이 굴이다.
 

글 ·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이 글은 2012년 6월 5일자 『기획회의』에 실린 글을 다듬어 <사계절 즐거운 책읽기 2012 가을호>에 다시 수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