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배우는 세상 : 박소연

2011 1318독후활동대회 - 글쓰기 부문 우수상
성호고등학교 1학년 박소연
 


내가 로버트를 만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하던 나였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워하고 있던 차에 친구의 책상에서 특이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그것은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었다. 표지가 화려한 것도, 작가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너무나도 쉽게 주인공 로버트에게 동화되어 갔다. 

이 책의 주인공 로버트는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다. 아버지는 돼지를 잡는 일을 하고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자신까지 농장 안의 집에서 살고 있다. 또한 로버트의 집안은 셰이커 종교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다. 하루는 로버트가 ‘행주치마’라고 불리는 이웃의 암소가 새끼를 낳는 과정을 도와주게 된다. 그 이웃은 감사의 표시로 로버트에게 새끼 암퇘지를 선물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것을 가지게 된 로버트는 암퇘지에게 ‘핑키’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사랑으로 키워 간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핑키는 ‘가장 예절 바른 돼지’로 뽑히기도 한다. 그러나 행복한 나날도 잠시,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지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가족들은 새끼를 배지 못하는 핑키를 더 이상 놔둘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 잔인하게도 열세 살의 어린 로버트는 핑키를 잡는 일을 돕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로버트는 아이의 몸이지만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도기에서 가족을 지키고 농장을 가꾸는 방법들을 찬찬히 되새기며 아버지를 땅에 묻는다.  

로버트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까지 가난을 원망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동질감을 느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나의 심정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미어지는 가슴이었지만 맏이여서 크게 울 수도 없었던 그 상황을 겪으며 누구보다도 로버트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었다. 로버트와 나는 비슷한 점이 많다. 아버지가 힘든 일을 하시는 것도 같고, 부유하지 못한 가정환경도 같다. 나도 어렸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갑자기 기울어지는 가정 형편에 적응하지 못해 혼자서 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로버트의 혼란스러운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에 더욱더 가슴이 아팠던 것 같다. 로버트의 아버지가 돼지 잡는 일을 했던 것처럼 우리 아버지는 현재도 힘든 일을 하고 계신다. 나는 항상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체중이 너무 줄어든 것도, 나에게 수학을 가르쳐 주다가 멈추신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족들과 말할 기운조차 없는 것도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게다가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이고, 아직은 생각이 어린 딸이어서 항상 죄송스럽다. 야윈 아버지의 뒷모습은 언제나 슬프게 다가오지만 그것이 세상에 나가기까지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나와 다르게 로버트는 씩씩하게 아버지의 죽음을 이겨 내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담담하게 슬픔을 삼키며 가족들을 지키려는 작은 몸짓이 얼마나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작가는 로버트를 통해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 자녀의 얼굴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핑키의 죽음을 통해 세상의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현실 세계를 조금이나마 먼저 느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로버트는 그것마저도 꿋꿋이 참아 내고 있다. 물론 눈물을 통해 핑키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지만 그 일 때문에 그는 절망하지도 않고, 떼를 쓰지도 않고 그저 조금씩 세상에 대해 알아 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가는 그를 지켜보는 부모님의 심정은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은 아마도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 잘 견뎌 내 주고 있는 아들을 대견하게 여기면서도 어린 나이에 막중한 책임을 맡기게 되어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 부모님은 항상 나에게 말씀하셨다. “능력이 많은 우리 예쁜 딸, 더 큰 그릇에 담지 못해서 미안해.” 나도 한때는 이러한 상황을 섭섭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환경에 맞춰서 살아가고 준비를 하며 기회가 왔을 때 그 환경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할 수 없다. 그리고 환경을 탓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로버트가 자신의 환경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잠시나마 가난을 원망했던 것처럼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어쩌면 끝까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로버트처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믿음으로써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 어른이 되기 위한 길은 쉽지 않고 로버트와 같이 담담하게 슬픔을 절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세상에서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는 그 안에서 새로운 현실을 마주하게 될 때에 더욱 지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곧 로버트의 아버지 펙의 뜻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로버트는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에서 그의 생각을 읽었는데 그것은 아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미리 일러 준 것이었다.

앞으로 로버트도, 나도 자라날 것이다. 우리는 금방 어른이 되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앞을 향해 가며 냉정한 세상과 마주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펙은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과 그 어둠 속에서 더불어 살아감으로 위기를 극복해 갈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이것은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과 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고, 우리를 지켜봐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서 오늘도 세상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여서 가진 것이 많다고 말하던 로버트의 아버지 펙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