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임진강』 답사 기행을 다녀오다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늘 더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해 주고 싶다. 이번 답사도 방학을 맞이하는 지역의 아이들에게 좋은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사계절출판사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사실은 아이를 키우고 도서관에서 지역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책 이야기를 전달하다 보면 매번 나의 모자람을 느끼면서 이번 기회에 임진강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배우고 싶다는 사심을 가득 담아 이번 기행을 준비했던 것 같다.
프로그램 계획에서 접수 진행까지 다른 프로그램들보다 조금 급박하게 준비되는 과정에서 가장 걱정이 되었던 건 참가자 모집이었다. 7월 말 가족들과의 여름휴가, 아니면 방학하자마자 정신없는 시기에 과연 임진강 기행을 함께할 친구들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참가자 접수는 마감되었고, 기행을 떠나기 전까지 접수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학부모들이 많았다.



첫 답사지 「숭의전」을 오르면서부터 벌레에, 더위에, 아주 조금의 등산에 많은 친구들은 “더워요.”, “힘들어요.” 를 외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인가 보다. 힘든 건 힘든 거고 준비해 온 수첩에 연필을 들고 적는다. 고려의 종묘인 숭의전에 모시고 있는 네 왕의 이름도 적고 배신청에 모시는 고려 신하들의 이름도 적는다. 「숭의전」 앞으로 나 있는 숲길과 임진강을 내려다보며, 500년 묵은 느티나무 앞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을 줄도 안다. 작가 선생님 옆에 붙어 더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바람이 가장 시원하게 부는 곳에 서서 자연을 즐기기도 하고, 비 온 뒤 나온 달팽이를 둘러 앉아 구경하기도 한다.
숭의전 앞에 있는 어수정(왕건이 마셨다는 샘물로 임금이 마신 물이라고 어수정이라 함)에서도 어떤 아이들은 더럽다며 마셔 볼 생각도 하지 않지만, 또 다른 아이들은 시원하다며 물병에 담아 오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기가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각자 경험한다. 같은 곳에 가도 모든 친구들이 같은 걸 보고 느낄 수는 없다. 두 번째 답사지였던



「유엔군 화장장」을 오가며 이미 지친 아이들에게 300미터의 오르막길을 걸어가야 만나는 「당포성」은 진행하는 입장에서도 조금 고민스러웠으나, 앞서 걸어간 아이들의 모습에 감탄했던 그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계단이 아닌 흙으로 쌓은 성벽의 가파른 비탈을 그대로 뛰며 기며 당포성 전망대를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올라간 아이들은 늦게 올라오는 아이들을 보고 적이 올라온다며 상황극을 펼치면서 신나게 뛰놀고 있었다. 이만큼 정확한 역사 이해가 어디 있을까? 성은 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그 성벽을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구조물인데, 이렇게 자연으로 변화한 역사 유적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담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경험하고 배우는 것들에 민감한지를 절실히 느꼈다. 유적 설명을 마쳤는데도 한 번 더 올라갔다 오면 안 되냐는 아이들도 있고, 점심을 당포성에서 도시락으로 먹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당포성은 고구려 성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화산의 흔적인 현무암과 협곡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천 년 전에도 불었을 시원한 바람을 맞이할 수 있었다.



힘들었을 오전 답사 일정을 마치고 점심 겸 통일촌 방문을 위해 통일대교를 건너면서 군인 아저씨의 검문과 이리저리 막혀 있는 바리케이드를 지나야 하는 상황에 약간 긴장감이 돌았지만 통일촌에서 먹은 맛있는 점심과 통일촌 할머니들의 환영에 아이들은 마치 외갓집에 온 것 같다며 무척 즐거워했다. 통일촌 마을 박물관에서 내려다보이는 남북한 국기대를 보면서 아이들은 우리가 분단 국가라는 걸 느꼈을까? 아이들이 더 자라면 마주선 국기 두 개가 어떤 의미인지 마음에 다가오는 날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민통선을 나와 ‘갈매기와 벗하는 정자’라는 뜻을 가진 「반구정」에 갔다. 점심을 먹고 한참 신나 있는 아이들에게 황희 선생의 일대기와 선생의 일화를 읽을 수 있는 방촌기념관을 먼저 들어갔으니, 이건 뭐(땀이 뻘뻘)…. 결국 총알같이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또 신나게 뛰면서 반구정까지 올라갔다. 분명 힘들다며 집에 가고 싶다고 한 아이들이 맞는지…. 비무장지대 덕분인지 몇백 년 동안 변하지 않는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반구정과의 만남으로 아이들과의 임진강 일대 답사를 마무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버스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의 시간을 이동했던 것 같다. 고려의 역사가 담긴 숭의전, 6·25전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엔군 화장장, 천 년이 넘는 세월을 담고 있는 당포성, 변하지 않는 자연과 역사를 마주할 수 있는 통일촌과 반구정까지, 지나간 시간과 아직도 나뉘어 있는 남과 북 그리고 두 개의 깃발이 꽂혀 있는 현대의 시간을 하루 안에 다 돌아보고 왔다. 현재가 지나면 역사가 되니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그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도 지금 우리의 몫이다. 이번 답사를 함께한 친구들이 커 가면서 오늘을 어떻게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 기억 역시 아이들의 몫이니까.

한빛도서관 사서 심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