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름빛> 문지나 작가



“추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계속 사라지지 않는 빛들처럼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추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계속 사라지지 않는 빛들처럼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여름빛』 문지나 작가


작가님은 여름을 좋아하나요?
네. 좋아해요. 제가 여름에 태어나기도 했고요.(웃음) 여름이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늘 설레고 기대가 되는 것 같아요. 가족들과 추억도 많이 쌓을 수 있는 계절이고요.

빛을 따라 여름의 순간을 그린 이야기가 흥미로워요.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어요?
첫 시작은 색깔이었어요. 어느 날 그림책 작가인 친구와 길을 가고 있었는데 친구가 같은 색의 사물들을 카메라로 찍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초록색 간판, 초록색 쓰레기통, 초록색 고무호스 등등. 그게 재밌어 보여서 저도 집에 와서 같은 색의 사물들을 나열해서 그려 보았어요. 그러다가 ‘사물의 크기가 점점 커지다가 다른 색으로 이어지면 재밌겠다.’라고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색깔별로 사물이 이어지는 내용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했고요. 그 이후에 여름에 휴가를 가는 아이의 이야기를 넣게 되었어요. 여름의 강렬함과 어울리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의 원색들을 썼고요. 글 작업은 추상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여름에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감각들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래야 여름의 느낌이 더 와닿을 것 같았거든요.




예전 작품에서는 한 번도 쓰지 않은 재료, 오일 파스텔을 선택한 이유?
아이디어 스케치를 할 때는 단순한 이미지들이었기 때문에 컴퓨터로 작업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야기가 복잡해지면서 수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재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예전 책들은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했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스타일로 그려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림 스타일을 바꾸는 게 어렵더라고요. 일부러 저에게 익숙하지 않은 재료를 써야지 생각하고, 오일 파스텔을 선택했어요.
제가 원래 깔끔하고 정돈된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는데, 오일 파스텔의 투박함과 그림을 그리면서 우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제 스타일을 새롭게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처음엔 재료가 익숙지 않아서 만족스러운 그림이 나오질 않았어요. 유튜브로 오일 파스텔로 작업하는 분들의 작업 과정도 찾아봤던 것 같아요. 그림 작업을 하면서 계속 생각했던 것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그리자’였어요. 그게 오일 파스텔의 매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오일 파스텔의 특징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림 작업을 재밌게 했어요.



이번 그림책은 그림을 모두 완성하고 글을 쓰셨지요? 평소에도 그렇게 작업하는 편인가요?
예전에는 글 작업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글에 맞춰 그림을 그렸는데요. 제가 스토리를 재밌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그림책 작업이 점점 어려워지더라고요. 이번 그림책은 전체적인 이미지의 흐름을 만든 뒤 글을 쓰니까 훨씬 수월하게 더미가 완성됐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계기로 이런 스타일이 저에게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여름빛』은 색깔 책 같아요. 빨강, 초록, 노랑, 파랑 등의 색깔이 장면을 점점 채우니까요. 색의 흐름을 잡을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있을까요?
처음에 같은 색의 사물들이 이어지다가 다른 색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색깔의 변화에 맞춰 아이의 여름휴가 이야기가 이어져야 했기 때문에 사물이나 장면들을 계속 고민하면서 바꿔 나갔어요. 같은 색의 사물들이 같은 방향에서 점점 커지도록 배치하기도 했고요. 예를 들면 빨간색은 오른쪽에서 시작하고, 초록색은 왼쪽 아래에서 시작하고, 노란색은 오른쪽 위에서 시작하는 식으로요. 마지막의 파란색도 원래 더미에서는 작은 이미지에서 커지는 흐름이었는데요. 편집부에서 파란색만 순서를 바꾸자고 제안해 주셨어요. 파란색으로 꽉 채운 바다 장면이 먼저 나오고 색이 작아지는 흐름으로 바꿨어요. 결과적으로 노란색에서 파란색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책의 하이라이트가 되고, 그 이후로는 여행이 끝나가는 느낌으로 마무리가 되어서 더 좋았습니다.

새벽에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적이 있어요. 작업 루틴이 있다면?
저희 아이가 지금 초등학교 저학년인데요. 아이가 아기였을 때부터 저희 집은 9시쯤에 집의 모든 불을 끄고 다 같이 잠자리에 들었어요. 아이의 수면 습관을 위해서요. 예전엔 아이가 잠든 걸 확인하면 다시 저와 남편은 일어나서 각자 할 일을 했는데요. 지금은 몸이 피곤하다 보니 저도 바로 잠이 들어요.(웃음) 그러다 보니 새벽 5〜6시쯤에 깨더라고요. 그래서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새로운 더미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요즘에는 아이가 학교와 학원에 가는 낮에도 그림책 작업을 해요. 비자발적인 아침형 인간이 된 거죠.(웃음)

그림책 작업을 빼고 최근에 몸과 마음을 쏟는 일이 있다면?
최근에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 같아서 매일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어요. 스트레스도 많이 풀리고요. 원래 독서를 좋아하는데, 요즘은 ‘뇌과학’에 관심이 생겨서 그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있어요. 잘 몰랐던 분야라서 흥미롭기도 하고,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림책에서 독자가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장면이 있을까요?
맨 마지막 장면이에요. 여름이 끝나갈 무렵, 문득 사라지는 여름의 빛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끼는 장면인데요.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덥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정신없이 노느라 그 순간들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때가 많잖아요. 여름이 지나가면 그동안 쌓인 여러 가지 추억들로 웃기도 하면서 새 계절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그림책을 만들면서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여름에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나 계곡으로 여행을 갔던 추억들이요. 추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계속 사라지지 않는 빛들처럼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 아름다운 추억은 늘 우리 마음속에 있어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변함없이 빛나고, 언제든지 꺼내어 볼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림책 작업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오전에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작업을 할 때가 제일 집중이 잘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동네에 친한 그림책 작가들이 사는데요. 일명 꿀벌 모임이에요. 다들 부지런하고 유쾌한 친구들이거든요. 그 친구들과 종종 카페나 집에 모여서 작업을 해요. 같이 맛있는 음식도 먹고, 삶의 고민들도 나누고요. 그럴 때마다 참 즐겁고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여름빛』의 글을 읽으면 작가님만의 노트가 있을 것 같아요. 아이디어를 어떻게 기록해 두나요?
저는 핸드폰 메모장을 가장 잘 쓰고 있어요. 핸드폰은 항상 손 닿는 곳에 있으니까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문득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핸드폰 메모장에 일단 적어 놓아요. 그렇게 아이디어들이 쌓여서 어떤 이야기로 발전이 되면 책상 위에 커다란 스케치북을 펼쳐 놓고 썸네일 스케치를 시작해요. 그 썸네일에서 전체적인 구성을 짜고요.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스케치와 채색 등의 더미 작업을 해요.


나에게 영향을 준 그림책 작가가 있다면?
저에게 영향을 준 그림책 작가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한 사람을 꼽으라면 존 버닝햄 작가님이요. 제가 처음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할 당시에는 그림책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림책 작가를 준비하는 친구를 따라서 존 버닝햄 작가님의 전시를 보러 갔어요. 그때 본 그림책들이 정말 흥미롭고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림이 화려하지도 않고, 어떤 교훈을 직접적으로 주지는 않지만 묘하게 공감이 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나도 이런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 상상마당에서 하는 그림책 워크숍을 듣게 되었고, 거기서 만든 책이 출간이 되어서 그림책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창작 더미 작업을 꾸준히 하신다고 들었어요. 다음 작업 계획을 들려주세요.
친한 작가들과 함께 ‘시소’라는 모임을 하고 있어요. 올해 10월에는 그분들과 함께 그림책 더미 전시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 전시를 위해서 열심히 새로운 그림책 더미들을 만들고 있고요. 그 외에 지금 작업하고 있는 다른 그림책도 있는데요. 월요일 아침에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가족의 모습을 코믹하게 담은 그림책이에요. 그리고 여름빛에 이어 겨울의 빛을 담은 그림책도 내년 겨울에 나올 수 있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작품들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