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전 연재] 구원의 미술관_강상중 미술 에세이 ① 구원의 미술관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컴컴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세차게 퍼붓는 비를 보고 있노라면
땅속 어딘가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에요.
괜스레 멜랑콜리해지는 월요일 오후,
이 분위기에 어울리는 책 한 권을 살짝 보여드릴까 합니다.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 『마음의 힘』 등으로
수많은 독자에게 삶의 용기와 이유를 주었던 강상중 선생님의 새 책
『구원의 미술관』입니다.




 


 




이 책은 강상중 선생님이 NHK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일요 미술관>을 진행하면서 만난 그림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우연히 강상중 선생님 앞으로 찾아온 한 장의 그림. 그것은 "나는 여기에 이렇게 서 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라고 묻고 있었다고 합니다. 과연 책 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을까요?


오늘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구원의 미술관』의 가장 극적이고 중요한 장면들을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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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우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들은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분명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자문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경제 상황, 약해진 사회적 유대, 격차와 빈곤, 퍼져가는 울분과 원망의 소리까지…. 3·11 이전에도 일본 사회는 제법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미증유의 원전사고까지 덮쳤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던 불안함과 초조함에, 방사능 오염이라는 공포까지 겹치면서 많은 사람들은 여태껏 겪어본 적이 없는 마음의 동요와 공허감에 시달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평범하지만 행복한 일상이 담보하던 안전과 안심을 상실한 우리들은 ‘현기증’이 나서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일본 사회의 중추를 이루는 정치, 행정, 경제 조직과 기구들이 동맥경화를 일으켜 권위와 위신을 거의 모두 잃었습니다. 우리들 역시 사회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붙들어주고 서로를 지탱해주려는 의욕이 사라지면서 많은 이들이 자기방어에만 급급해졌습니다. 그 결과, 세상의 정신적인 윤곽이 점점 더 모호해지고 그 형태를 잃고 있는 듯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
삶에 의미나 가능성을 부여해주는 것들이 단단하게 고정되기는커녕 불안정하고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우리는 불안과 고통, 구토가 날 정도의 현기증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어떤 목적도 의미도 없이 그저 다음날로 계속해서 이어져가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과거란 어떤 것의 서곡이나 전조도, 시작도, 초기 단계도 아닌, 일종의 허무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러고 보니 2010년에 영화로 만들어져 다시금 화제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마지막 장면에는 주인공이 다음과 같이 절규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짐작도 가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일까?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이미 너무 걸어가 버린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어디도 아닌 곳 한가운데 서서 미도리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다.”

 

 
저는 아무런 희망도 장래도 없이 어찌할 바를 모르던 독일 유학 시절에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자화상>을 만났습니다.

저는 ‘자이니치在日’라는 출신 외에도 애당초 살아가는 의미 나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왜 살아 있는지, 이 시대는 어째서 나의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지 같은 여러 의문들을 끌어안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뒤러의 <자화상>을 만나고 제 안에 있는 우울한 납빛 하늘이 환히 밝아오는 듯 느껴졌습니다.
‘나는 여기 있어.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림 속의 뒤러가 이렇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아서 저는 몸이 떨릴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과장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제게는 마치 그것이 500년의 시공을 뛰어넘은 어떤 계시처럼 느껴졌습니다.

‘맞아.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시대를 살아가는지 그리고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그것을 탐구하면 돼. 그저 어딘가에서 주어지는 의미나 귀속점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면 되는 거야.’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어쩐지 살아갈 힘이 샘솟았습니다.
 
그림은, 이런 평범한 인간에게도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알랑거리며 맞춰주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깊은 부분에 숨겨진 채 평소에는 자기 자신조차 눈치 채지 못했던 ‘감동하는 힘’을 그저 눈 앞에 ‘있는 것’만으로 불러일으킵니다. 그저 눈앞에 ‘있는 것’뿐인 그림. 그러나 우리들이 그것에 가까이 다가서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있는 것’ 자체로 시각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부를 흔들어놓는 그림. 분명 그림은 특정한 선과 형태, 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상’을 통하여 아니, 오히려 이 가상이라는 점을 떨쳐낼 수 없기에 그림은 우리에게 미의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문자도, 소리도 없이 그저 침묵 속에서 우리들에게 보이길 바라며 지내온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 그리고 또 수십 년, 수 백 년의 세월을 기다리는 그림들. 그중 하나의 그림과 만난 요행을 누린 저는 미의 진실을 접하고, 그 조용한 감동을 지금까지도 반추하고 있습니다.

제가 2년에 걸쳐 일본공영방송 NHK <일요 미술관> 사회를 맡게 된 것도 뒤러의 그림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은 방송 당시 접한 인상 깊은 작품들과의 만남을 기반으로 제 나름의 ‘미의 진실’과 ‘인생의 심연’을 찾아보고자 시도한 결과물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예술 작품이 가진 힘을 통해 지금 우리들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실마리를 분명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작가
  • 강상중
  • 출판
  • 사계절
  • 발매
  • 201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