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부모 말고 모모



내 딸 라니도, 쥘리에트처럼

 
김규진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작가)

 
구체적인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어렴풋한 개념과 먼 곳의 소식에 이름과 얼굴이 붙는 순간,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공감하며 연대하게 만든다.
『부모 말고 모모』의 초반을 읽으며, 나는 저자인 로진느를 도무지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저자 둘 다 동성 배우자와 살고 있으며, 모국에서 허락하지 않는 임신을 결심하고 실행했으며, 그 이야기를 대중에게 알렸다는 흔치 않은 공통점이 있는 만큼 의외일 수 있겠다. 하지만 파리에서 외국인으로 살아본 동양인 여성인 내가 자신의 여정을 만리장성에 빗대는 프랑스인을 좋아하기 또한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의무감과 의리로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로진느에 대한 독자로서의 호감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책은 로진느와 나탈리 부부가 겪는 두 차례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을 시간 순서를 따라 기술하는 데 집중한다. 저자의 직업이 법률 전문기자인 이유에서인지, 육하원칙에 입각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쓰여 있다. 분명 공개하기 쉽지 않았을 이런 디테일은 독자로 하여금 로진느 부부의 상황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부모님이 딸의 결혼을 축하하지 못하는 모습, 국내 정자 기증이 허용되지 않아 장장 네 시간 반이나 걸리는 옆 나라 도시까지 찾아가야 하는 모습, 그렇게 찾아가서 한 시술이 실패하여 0.6이라는 낮은 HCG 수치를 보고 속상해하는 모습, 결국 임신과 출산에 성공했음에도 동성 배우자 역시 엄마임을 판사에게 증명해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아니 프랑스는 구대륙의 제1세계 선진국 아닌가? 한국이야 그렇다 쳐도 대체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에서 높으신 분들은 무얼 하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로진느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 어느 틈엔가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의 삶으로 돌아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작중의 주요 시간대는 2018~2019년도, 프랑스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된 지 약 5년 후의 이야기이다. 동성혼과는 별개로 동성부부의 재생산권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았기에, 로진느와 나탈리는 아이 둘을 가지기 위해 책을 써야 할 정도의 여정을 거치게 된다. 2023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결국에 이들이 승리한 것을 알고 있다. 2021년 프랑스에서는 비혼 여성과 레즈비언 부부를 대상으로 한 정자 기증과 시험관시술이 합법화되었다. 더하여 로진느가 한 챕터에 걸쳐 열변을 토하던 아이의 정자 기증자 정보에 대한 접근권 역시 보장이 되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저자가 책을 쓴 보람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출판되는 한국은 어떨까? 나는 프랑스에서 직장을 다니며 임신을 준비하였는데, 동료들에게 ‘내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동성부부 임신 사례가 될 거야’라고 얘기하면 다들 깜짝 놀라곤 했다. 케이팝과 〈오징어 게임〉의 나라로 알려진 한국이 성소수자 인권에서는 뒤처져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모양이다. 실제로 일개 회사원인 나의 임신 소식은 한국 사회에는 꽤 충격이었던 모양인지 포털 메인을 장장 나흘 동안 장식하였다. 댓글란은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그렇지만 자신이 차별을 그만둘 의향은 전혀 없는 시민들의 오지랖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법률적, 행정적 상황은 더욱더 열악하다. 비혼 여성과 레즈비언 부부의 재생산권은커녕, 동성혼도, 생활동반자법도 심지어 차별금지법도 법제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프랑스의 PACS가 99년도에 도입된 것을 생각하면 약 24년 정도 뒤처져 있는 셈이다. 『부모 말고 모모』는 앞으로 강산이 두 번 넘게 바뀌어야 한국에 사는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고 믿는다. 빨리빨리의 나라, 흐름을 타면 해내는 나라, 보수적인 것 같으면서도 한 번 바뀐 일에는 금방 적응하는 나라인 한국에서 레즈비언 부부의 아이에 대한 미래 역시 다르게 펼쳐질 거라 믿는다. 그 미래가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빠르게 다가올 수 있도록 나는 이 책이 널리, 또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동양인으로서 로진느가 책에서 서술하는 몇몇 비유들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던 내가 알지도 못하는 가상의 프랑스 판사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게 된것처럼, 동성부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연대할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파트너인 나탈리가 쥘리에트의 법적 엄마가 되기까지는 일 년의 세월이 걸렸다. 곧 태어날 내 딸 라니가 와이프의 법적 자식이 되려면 일 년보다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라니가 쥘리에트처럼 책 제목을 ‘예쁜 엄마들’이라 지어줄 딸이라면, 그 기다림이 힘들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못생긴 엄마들’이라 지어줄 개구쟁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