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 숀 탠의 『잃어버린 것』을 읽고 : 조은영

제3회 독서감상문 대회 일반부 우수상
조은영
 

 
오래 전 내겐 태엽을 감으면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인형이 있었다. 분홍색 옷을 입은 천으로 만든 인형이었다.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줄 알았던 공주처럼 예쁘고 귀여워 책상 위에 올려두고 혼이 나서 우울하거나 속상할 때 태엽을 감고 또 감았던 인형.

그 인형을 선물 받았을 때 ‘이제부터 넌, 나의 보물 1호야.’라고 일기장 가득 적고 또 적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나는 그 시간에 따라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 사이 난 인형보다는 친구들이 더 좋아졌고 우울할 때도 인형의 태엽을 감기보다는 대상도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사람들에게 화풀이는 하는 것으로 풀어버리곤 했다. 내가 눈치채지도 못하는 그 사이에. 

그러면서 조금씩 그 인형도, 내게 인형을 선물해 준 사람도 차츰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참고서가 쌓이고 놓아야 할 것이 많아지면서 태엽 인형은 책상에서 침대 머리맡으로, 침대 머리맡에서 장식장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분홍색 옷을 입은 인형은 늘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난 더 이상 그 웃음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맞아. 나한테 태엽을 감는 인형이 있었어.’하고 생각했을 땐 이미 그 인형은 나의 방. 우리 집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뒤였다. 어디로 사라진 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그 인형을 나는 지금도 이따금씩 떠올린다. 정성껏 지어 줬던 인형의 이름도, 인형에서 흘러나오던 멜로디도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잃어버린 게 아니야. 그냥 사라져 버린 거야.’라고 말하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는 새로 생기는 물건들만큼이나. 잃어버리는 물건들이 많아졌다. 필통 속에 넣고 다니던 펜이나, 우산, 지갑, 심지어는 가방을 잃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땐 내 건망증을 탓하고 나면 그만이었다. 잃어버린 물건들이 어디로, 어떻게 가게 될지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나는 ㄴ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잊혀지는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 모든 건 시간이 해결 해 주는 거라고.

숀 탠의『잃어버린 것』이라는 책 속의 이야기는 짤막하지만 나의 태엽 인형을 떠올리기에는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어떤 물건’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갔을 때 주인공의 부모님이 보인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부피만 차지하는 ‘어떤 물건’ 보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게 우선인 요즈음 누가 버려진 물건에 일일이 관심을 갖겠는가. 더구나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려도 다시 사면된다고 생각하는 요즘에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서 나는, 잃어버리는 것은, 단지 물건뿐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 물건을 구입할 때 생각했던, 기억하고 싶었던 추억까지도 우리는 함께 일어버리는 것이라고.

주인공 ‘나’와 버려진 물건은(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거리의 어둡고 좁은 틈새에서) 한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큰문이 열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작별 인사를 한다. 그 안에는 많은 물건들이 모여 있었다. 어딘가에서 버려진,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들이, ‘나’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따금 그 곳을, 물건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곳은 썩 마땅한 장소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그 물건들에게 어울리는 장소는 어디란 말인가.

다시 태엽 인형 얘기를 해야겠다. 그 인형을 내게 선물한 사람은 그 즈음 나를 가슴앓이 하게 했던 내 첫사랑이었다. 인형을 선물 받고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인형을 바라보면서 아마도 나는 단순히 인형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의 우울하고 속상한 일을 그 사람에게 하나하나 얘기하면서 나를 위로해 주기를 바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형이 책상에서 장식장으로 그리고 나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이 나는 천천히 그 사람까지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젠 얼굴도 흐릿해진 그 사람과의 소중했던 추억까지도 이젠 흐릿해져 버린 것 같아 문득 서운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그 인형이 있는 곳도 ‘어떤 물건’처럼 버려진 물건들이 모여 있는 그런 곳은 아닐까. 그곳에서 물건들은 어느 동화에서처럼 서로 자신을 버린 주인들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 있지는 않을까.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지금 누가 내게, 너의 보물1호가 뭐야? 라고 묻는다면 난 한참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그만큼 난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그리 필요도 없는 것들부터 내가 매일 사용하는 사소한 물건들까지. 그러나 나도 모르게 그것들이 하나씩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난 아마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대체할 또 다른 무엇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면 너무 많은 것들 중 하나라는 생각에 사소하게 여기고 있는 것일지도.

 
더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