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책 너는 날』 김주현, 강현선 작가


“책을 소중히 여겼던 마음들과
햇볕과 바람이 가득한 계절의 아름다움이
함께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김주현


1. 평소 옛사람들의 산문집을 즐겨보신다고 들었습니다. 이 책의 글을 처음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책만 보는 바보로 알려진 조선 시대 선비 이덕무의 산문집을 보면 책벌레가 책의 글자를 갉아 먹은 장면이 나옵니다. 처음엔 화를 내다가 책벌레가 향기로운 글자만 갉아 먹은 것을 보고 기특해서 감탄하죠. 또 박제가의 산문에는 책을 널기 위해 꺼내 보다가 보자기에 싸인 어린 시절의 물건들을 찾아내곤 추억에 잠기는 모습이 나오고요. 그런 문장들에서 시작해 『농가월령가』를 보니,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로만 알았던 칠석날에 책 너는 풍속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책을 소중히 여겼던 마음들과 햇볕과 바람이 가득한 계절의 아름다움이 함께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2. 책 너는 풍속이 어린이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옛사람들은 책과 살림살이를 왜 마당에 널고 말렸을까요?
 
책을 만들 때 쓰인 한지는 ‘살아 있는 종이’라고 하여 바람이 잘 통하고 습도에도 강한 편입니다만, 책벌레의 공격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특히나 수시로 펼쳐 읽지 않는 책이라면 습기가 차서 오래 보관할 수 없습니다. 제습기나 건조기, 소독기도 없는 시절에 옛사람들이 해가 쨍쨍하고 바람이 좋은 날을 골라 책과 살림살이를 내어 말린 것은 자연에서 건조하고 살균하는 법을 지혜롭게 찾아낸 것이죠.

 3. 마을 풍경을 들여다보면 대감댁 도령, 가난한 선비, 초가집 돌이처럼 조선 시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나오는데요. 당시에 집집 마당의 모습이 달랐을 것 같아요.
 
기와집은 안마당과 뒷마당, 꽃과 나무가 심긴 앞뜰 뒤뜰이 있었을 겁니다. 그에 반해 초가집이야 작은 마당 하나 정도가 있었겠지요. 마당의 크기뿐 아니라 평민 집에는 주로 감나무 밤나무 등 먹을 수 있는 유실수를 심었다 하고, 양반 집에는 소나무, 매화나무, 대나무 등 선비의 정신을 기르게 한다는 나무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책 너는 날에는 마당에 책과 살림살이를 다 꺼내어 놓기에 부잣집과 가난한 집의 형편이 그대로 드러났을 거예요.
 

4. 초고에 부제처럼 ‘햇볕아 바람아 고마워.’라고 쓴 구절이 종종 떠올랐습니다. 이 책에서 햇볕과 바람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실 책 너는 날이라는 세시 풍속도 재미있었지만, 처음 책을 쓸 때의 마음은 지루한 장마 끝에 세상 모든 생명들에게 쏟아지는 햇볕과 바람의 고마움을 함께 느껴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구별 짓고 나누기를 좋아하지만 햇볕과 바람은 기와집과 초가집을 구별하지 않으니까요. 집안 형편에 상관없이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햇볕은 내리쬐고 바람이 부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5. 가장 좋아하는 한 장면은?
 
하나를 꼽으라니, 정말 어렵습니다. 햇볕이 아까워 돌이 어머니가 고추며 호박, 행주, 그릇 등을 널어놓은 장면도 좋은데요. 마지막 장면에서 마을이 자연 속에 포근히 안겨 있는 모습도 참 좋습니다. 자연에 기대어 햇볕과 바람을 즐기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 준 듯해서요.






“나무, 풀, 꽃 같은 자연물을 관찰하면 무척 질서 정연해요.
그 모습에 영감을 얻어 무늬를 스탬프에 찍어 표현했어요.”

 
- 강현선

1. 맑고 산뜻한 색감의 그림에서 청량함이 느껴집니다. 글을 읽고 처음 떠올린 이미지가 있었나요?
 
원고를 읽고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기와가 햇살에 반짝이는 이미지였습니다. 비 온 뒤 깨끗해진 공기와 기와, 마당, 풀 같은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2. 지우개, 아이스크림 뚜껑 등 여러 재료를 모아 스탬프에 찍어 무늬를 만들고, 콜라주 기법으로 그림을 완성하셨는데요. 그림 작업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풀과 나무 같은 자연물의 경우 무늬를 스탬프에 찍어 표현했는데요. 표현 기법에 대해 종종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자연물을 규칙적으로 찍어 표현하는 방식이 자연스러운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지요. 그런데 나무, 풀, 꽃 같은 자연물을 관찰하면 무척 질서 정연해요. 나뭇가지가 뻗어 나가는 모양, 잎맥의 모양을 자세히 보세요. 자연물의 모습에 영감을 얻어 무늬를 규칙적으로 찍었고 그림의 강약 조절을 위해 콜라주 기법을 썼습니다.
 

3. 거의 모든 장면에 꽃과 나무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림을 따라가면 마을 풍경을 천천히 둘러본 느낌이 나기도 하고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 한때가 떠오르기도 해요. 꽃과 나무를 좋아하시나요?
 
자연물을 좋아합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항상 영감의 원천이에요. 제가 작가관을 이야기할 때 일상의 아름다움을 말하는데요. 일상의 아름다움엔 언제나 자연이 있는 듯합니다.
 

4. 책에서 종종 새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도입부에 새가 날아오르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끝부분에는 새가 하늘 위로 높게 솟아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책은 햇볕과 바람에 책을 말리는 아름다운 마을이 떠올려지는 이야기인데요. 마을을 부드럽게 아우르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엔 돌이네 강아지나 바람으로 표현해 보려다가 자연스럽게 새가 된 것 같아요. 새가 햇볕이나 바람처럼 장면에 녹아 있기를 바랐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새의 시점을 통해서 책 너는 마을을 새롭게 바라보고 느낄 수 있게 그렸어요.
 


5. 『책 너는 날』을 표현할 때 가장 고민한 것은?
 
가장 신경 쓴 것은 색감과 시선이었습니다. 책 너는 날이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변해 가는 시기여서요. 초반에는 초록과 파랑을 쓰다가 책의 뒤로 갈수록 짙은 녹색과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색감을 부분적으로 넣어서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선인데요. 대감집, 선비네, 돌이네를 한 공간에 어울리는 곳으로 보여 주고 싶었어요. 구도와 원근감을 세심히 고려하여 마을 풍경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