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밑줄 그은 구절 : 참다운 인간의 길

월드컵 열기에 취해 있던 2002년, 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를 만들기 위해 인도와 파키스탄 등지에서는 어린이들이 하루 12시간이나 일해야 했다. 열다섯 살의 인도 소녀 소니아는 다섯 살 때부터 일당 300원을 받고 화학물질이 섞인 실로 축구공을 꿰매다 시력을 잃기까지 했다.
 
 
청소년들에게 삶의 지침이 될 만한 수필을 모은 책 『사람 사이에 삶의 길이 있고』에 실린 권정생 선생의 글을 읽으며, 가슴에 바위가 들어차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말았으면 좋으련만, 오늘도 여전히 어린 권정생은 무수히 많다. 왜 우리는 밥 한끼를 위해 눈물 흘리고 일해야 하는 어린이들을 생각해야 할까?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선진과 후진이 없어야 한다."
 

IMF 이후 우리나라의 빈곤층은 도저히 회생 불가능한 상태이지만, 부유층은 오히려 확고부동한 부를 구축하고 있다. 어린 시절, 가끔 들었던 선친의 말이 생각난다.
"돈이 있으면 바보도 똑똑해 보이고, 돈 없으면 똑똑한 이도 바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니라."
나는 그 말을 절대로 믿지 않았고, 지금도 믿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말이 맞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불안해진다. 나같이 어리석은 자를 위해 권정생 선생은 "경제적인 후진만으로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기름진 고깃국을 먹은 뱃속과 보리밥 먹은 뱃속의 차이로 인간의 위아래가 구분지어지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고, "약탈과 살인으로 살찐 육체보다, 성실하게 거둔 곡식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는 정신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의 길"이라는 것이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권정생 선생은 해방 이듬해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네 군데의 초등학교를 거쳐 열여섯 살에야 겨우 졸업했고, 열 살 때부터 밥을 짓고 설거지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나무 장수를 시작했고, 이어서 고구마 장수, 담배 장구, 그리고 점원 노릇을 했다. 그러다가 결핵을 앓게 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3개월 동안 유랑 걸식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마저 세상을 뜬 이후 소년 권정생, 그리고 청년 권정생은 교회 문간방에 들어가 16년 동안을 살았다. 서향으로 지어진 예배당 부속건물의 토담집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다. 여름에 소나기가 쏟아지면 창호지 문에 빗발이 쳐서 구멍이 뚫리고 개구리들이 그 구멍으로 뛰어들어와 꽥꽥 울었다. 겨울이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이불 속에 들어와 잤다.
 
 
"개구리든 생쥐든 메뚜기든 굼벵이든 같은 햇빛 아래 같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고통도 슬픔도 겪으면서 살다 죽는 게 아닌가? 나는 그래서 황금덩이보다 강아지 똥이 더 귀한 것을 알았고, 외롭지 않게 되었다."
 
 
선생의 넉넉한 마음에 우리는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어린이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말 가슴에 바위를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파키스탄의 한 소년의 말이 다시 가슴에 바위로 얹힌다.
"아빠는 농부고 우리는 7남매예요. 지난 4년간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축구공을 만들었어요. 부모님이 내 교육비를 낼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축구공을 만들어야만 해요. 나는 방과 후 하루에 한 개씩 축구공을 만들어요. 그 돈으로 학비도 내고 교복도 사고 자전거를 수리하기도 해요. 만약 아동 노동을 금지한다면 우리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굶어죽게 될 거예요."
 
 
 
글 · 차창룡 (시인)
 
 
 
1318북리뷰 2004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