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너만의 냄새_서로를 배려하는 세상을 꿈꾸는 일곱 빛깔 이야기

나는 단편을 모은 동화집을 보면 제목으로 나온 작품부터 읽는 버릇이 있다. 어쩐지 그 작품이 가장 재미있어서 표제작이 되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표제 작품을 읽고 책을 살지 말지 결정한다. 이 책을 책방에서 보았을 때도 그랬다. 『너만의 냄새』라는 제목은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면서 뭔가 색다를 거라는 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고양이와 쥐 이야기, 쥐 이야기라면 『뉴욕 쥐 이야기』 이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코를 자극하는 듯한 무언가에 이끌려 그 자리에서 「너만의 냄새」를 읽어 나갔다.
 

새끼를 밴 상처 입은 고양이와 쥐의 동거, 이들이 함께 있는 시간은 시한부적이다. 쥐는 애써 구한 음식을 고양이에게 주고 고양이는 먹이를 구하느라 지친 쥐를 제 몸에 기대게 하면서 서로를 조금씩 받아들인다. 결국 쥐는 새끼 낳을 때가 된 고양이에게 집을 비워 주고 쓸쓸하게 떠난다. 마지막 장면이 더없이 쓸쓸하다. 서로가 뿜어 내는 냄새가 경계와 위협의 신호였던 이전과 달리 그리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궁창의 칙칙한 냄새와 상처 입은 고양이 냄새, 비에 홀딱 젖은 쥐 냄새가 뒤얽혀 이 짧은 작품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한 편을 읽고 난 뒤 책을 사기로 했다. 그러고는 집으로 오는 길, 전철에서 한 편을 읽고 다시 집에 와서 할 일을 대강 마치고 스탠드 불빛 아래 나머지 작품을 다 읽었다. 이야기 일곱 편이 하나같이 독특한 빛깔을 내뿜고 있다. 책을 덮고 나서 일곱 편 제목을 헤아려 보았을 때 작품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한 작가가 쓴 작품집이면 대개 비슷한 분위기를 띠게 마련인데 이 작품집은 그렇지 않았다.
'글쓴이의 말'을 읽어 보니 어린아이 셋을 기르며 이 동화들을 썼다고 되어 있다. 아이 셋을 기르는 일이 몹시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동화들을 빚어 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그런 현실이 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고민을 깊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실린 작품들 밑바탕에는 한결같이 작고 여린 것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깔려 있다. 마치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이렇게 말하면 작품들이  너무 착하게 이야기를 풀어 갔을 거라는 의심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작가는 독특한 구성과 색다른 분위기로 각각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나무 다리」는 생활동화이지만 인물의 특징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이 꽤 소설적이다. 다리를 깁스한 아이가 화자가 되어 끌어가는 이야기인데, 욕을 입에 달고 사는 1층 할머니나 담장 너머 채소 파는 총각 아저씨 같은 인물에 대한 묘사가 아주 뛰어나다. 이 두 사람을 묘사한 것만 가지고도 재개발을 앞둔 가난한 동네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매력 있는 것은 주인공 아이가 날마다 듣는 갖가지 소리를 묘사한 장면들이다. 아이는 자장면집 스쿠터, 가스 배달부 오토바이와 우체부 아저씨 오토바이,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오토바이 소리를 구별해 내고 할머니의 기분까지 점칠 줄 안다. 잔소리를 해대는 할머니와 감나무를 다짜고짜 잘라 버리는 아저씨 때문에 이야기는 내내 묘한 긴장감을 주기도 하지만 너무도 외로운 이들은 서로를 보듬을 줄 안다. 끝에 가서 이들이 곧 친해질 거라는 기분 좋은 예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격장의 독구」나 「친구를 제공합니다」는 쓸쓸하면서도 메마른 듯한 분위기를 내내 풍기는 작품들이다. 「사격장의 독구」는 죽은 개가 이야기의 화자다. 죽은 개는 살아온 날들을 회상한다. 무언가를 쏘아 넘어뜨리는 유원지 사격연습장에 살던 그저 똥개에 지나지 않는 이 개는 이리저리 치이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죽기 전 유일하게 배우를 꿈꾸며 유원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총각에게 사랑을 받는다. 총각은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걷어차는 주인과 달리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쥐포도 주며 제 꿈도 이야기한다. 그래서 개는 죽기 전에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것을 꿈꾸어 본다. 그리고 배우 총각이 말한 것처럼 죽어서 만발한 꽃 속에서 꿀벌 향기를 맡으며 행복해한다. 그런데 개는 행복하다는데 책을 읽는 나는 도리어 슬프다. 평생을 서럽게 살았더라도 죽기 전 단 한순간만이라도 사랑받는다면 그 인생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마지막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이 생각나서 슬프고, 겨우 몇 초 동안의 행복밖에 얻지 못한 이들의 생이 생각나서 슬프다.
 
「친구를 제공합니다」 역시 외로운 아이 이야기다. 리얼, 현실에서 친구를 얻지 못한 아이는 컴퓨터 가상 공간에서 캐릭터를 만들어 논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게 공격받게 되고 어머니가 전원을 끄고 나서야 악몽 같은 그 곳에서 벗어난다. 아이는 가상 공간에서 벗어나 어머니 품에 안겨서는 엄마 냄새를 느낀다. 더 이야기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요즘 아이들의 문제적인 일상을 소재로 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보니 작가는 대상과 대상이 관계 맺는 일을 감각을 동원해서 풀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만의 냄새」에서 쥐는 부드러운 고양이 품에 기대어 잠을 자고, 「나무 다리」에서 아저씨는 아이를 업어다 준다. 「사격장의 독구」에서 배우 총각은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친구를 제공합니다」에서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긴다. 업어 주고 안아 주고 품어 주고 쓰다듬어 주고 하면서 외롭고 쓸쓸한 이들은 위로를 받는다.  
 
「병풍암 산신령」과 「담장 하나」는 앞의 이야기들과 달리 발랄하고 유머러스하다. 어른들만 나오는 이야기인데 동화의 특성을 잘 살려 놓아 꽤 재미있다. 「병풍암 산신령」은 단칸방에 살며 딸이 돌아오기만을 비는 김 노인이 산신령과 만난 뒤 빚 독촉을 하던 금 여사의 아들을 살게 해 달라고 빈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낭만성이 짙게 풍겨 오는 작품이다. 유치한 일로 지지고 볶는 「담장 하나」도 순진한 인간의 면모를 잘 보여 준다.
 
「서울 아이」에는 집안 문제로 시골 친척에게 잠시 맡겨지는, 동화 속에 흔히 나오는 도회지의 인물이 나온다. 그런 아이들은 대부분 잘난 척하거나 고상한 행동으로 아이들과 잘 섞이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어울리게 되거나 이성의 관심을 받다가 떠나기 마련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서울 아이도 그런 공식에서 크게 비켜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울 아이는 지금까지 그런 유의 인물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제 아픔을 이겨 내려는 과장된 행동과 상상력이 발랄함과 알맞게 섞인 사랑스런 인물이다. 친구들도 그 아이의 천진한 상상력에 감염된다. 이 아이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 「벚꽃 나무 아래에서」(『난 뭐든지 할 수 있어』)에 나오는 거짓말쟁이 여자아이와 무척이나 닮았다.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밉지 않은 사랑스런 아이, 서울 아이 역시 갑작스레 떠나지만 눈물 따위는 흘리지 않는다. 어른이 되면 칵테일 파티를 열자고 약속하며 언덕 너머로 사라진다. 상큼한 마무리지만 묘한 여운을 남긴다.
 
내가 좋아하는 책 목록에는 그림책이나 장편동화가 많다. 창작동화집은 몇 권 되지 않는다. 현덕의 『너하고 안 놀아』, 박기범의 『문제아』, 오카 슈조의 『우리 누나』, 이 정도다. 하지만 안미란의 『너만의 냄새』를 읽고 나서는 내 책 목록에 또 하나가 추가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읽어 줄 생각이다. 내가 만나는 6학년 아이들, 사춘기에 접어들어 세상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게 되는 아이들에게 잘 스며들 작품이다.
 
 
강승숙  20년 넘게 인천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글쓰기 교육에 관심이 많아 아이들이 쓴 글을 모아 자주 문집을 냅니다. 예술 교육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자주 읽어 주고 연극 놀이, 리코더 연주, 노래부르기를 즐겨 합니다. 오랫동안 실천해 온 교육 성과를 모아 『행복한 교실』을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