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일기 2012 l 고려의 공녀, 기황후 : 이해련

내가 쓰는 역사 일기 대회 2012 / 개인 부문 장려상
백봉초등학교 6학년 이해련
 
 
 
1333년 5월 10일
 오늘은 너무나도 끔직한 날이다. 공녀 시험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리 시집을 가 두는 건데 하고 한숨을 내쉬는 어머니. 어차피 혼례도 마음대로 올릴 수 없게 된 나라인데도 자신을 자책하시는 어머니가 안쓰러우면서도 혹여 공녀로 뽑히게 될까 두렵기만 하다. 아주 명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고려 무신의 딸인데....... 어찌 이런 치욕스런 시험을 보는지 한탄스럽기까지 하다.
 
1333년 5월 11일
 내 옆에는 지금 단도가 있다. 이걸로 심장을 찔러 자결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막상 꺼내어 보니 그 시퍼런 날이 다른 때와는 달리 이빨이 딱딱 부딪칠 정도로 무섭다. 항상 멋지게 바람을 가르는 칼의 소리, 항상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던 칼의 맛, 항상 내 정조를 지켜 주었던 칼의 마음을, 이젠 느낄 수 없다. 이 단도로 나의 가슴과 어머니 아버님의 가슴에 칼을 꽂고 차가운 시신이 되던지,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가 비구니가 되던지, 치욕스러운 원나라 장수의 첩이 되던지의 선택 밖에 할 수 없는 나는, 이미 원의 공녀가 되었다.
 
1333년 5월 12일
 지금은 원으로 가는 배 안에 있다. 그래서인지 글씨가 엉망이 되었다. 이곳에는 나처럼 공녀가 되어 원으로 향하는 계집애들이 매우 많다. 그 중 한 아이가 ‘서희’ 이다. 성은 기. 처음으로 사귀게 된 동무다. 서희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나이가 같다는 점도 그러했고 아버님이 고려의 무신이라는 점도, 막내라는 점도 그랬다. 하지만 그 애는 나와 달리 야무지고 당찼다. 그리고 고려를 원망했다. 이렇게 어린 자신을 낯선 타국 땅으로 떠민 고려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나도 나를 원으로 보낸 고려가 미웠지만 그보다는 고려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다.
 
1333년 5월 13일 
 드디어 원에 도착했다. 몇몇의 사내들이 다가오더니 얼굴 생김새와 출신 등을 살펴보곤, 각자 계집애들을 데리고 떠났다. 나와 서희는 다행이도 같은 사내를 따르게 되었다. 그 사내는 자신을 ‘고용보’라고 소개했다. 놀랍게도 그는 고려인이었다. 고려 출신으로 화관이 된 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수를 놓을 줄 아는가, 원의 말을 할 줄 아는가, 차를 끓일 줄 아는가 등을 물었다. 서희는 원의 글은 모르나 말 정도는 할 줄 아며 차도 끓일  줄 안다 답했다. 나도 다도 정도는 할 줄 알았다. 여인이라면 다도쯤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모의 성화에 수십 가지의 차를 배운 터였다. 원의 말은 예전에 원에 유학을 다녀온 오라버니에게 잠깐 배운 적이 있었고. 이런 일에 쓰일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하였으나 배워 두었던 것이 이젠 여러 가지로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라버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1334년 7월 2일
 나의 궁녀생활은 비교적 순탄히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원에는 없는 여러 가지 희귀한 차들을 알고 있다. 그것을 원의 윗전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다른 궁녀들은 달랐다. 서희 이외의 다른 궁녀들은 자신의 나라에 조공이나 바치는 고려인 그리고 그런 고려가 버린 우리를 벌레를 보는 듯이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래도 원 조정의 궁녀다. 깨끗한 곳에서 깨끗한 옷을 입고 따듯한 음식을 먹으며 살 수 있다. 하지만... 양인의 자식이 아니라, 원의 말을 알지 못하여, 뛰어나게 아름답지 못해서 원 장수의 첩이, 더러운 기생이 되어버린 그 아이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매일 잠자리에서 숨이 막히도록 드는 의문이나 해답은 찾을 수 없다.
 
1334년 7월 9일
 요즘 서희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차도 더 열심히 끓이고 특히 단장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서인지 훨씬 아름다워졌다. 분위기도 밝아졌고. 뭐랄까... 어른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알던 서희가 아닌 여인 서희. 혼례를 올린대두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궁녀의 몸이 할 만한 소리는 아니지만.
 
1336년 7월 31일
 오늘은 너무 끔직하다. 서희가...... 서희는 황제의 여인이었다. 모두, 심지어 나도 모르도록 서희는 황제의 여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 하늘 아래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듯, 서희는 황후의 궁녀에게 황제와의 사이를 들키고 말았다. 평소 시기심과 투기로 유명했던 황후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황후는 서희를 수차례 채찍질 하고 폭언을 퍼부었다 한다. 하지만 서희는 여전히 황제와의 만남을 유지했고, 채찍질 당한 일 또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런 서희의 모습을 본 황후는 오늘...... 마침내...... 허물 죄 자를 그녀의 팔에 새겼다. 새빨갛게 달구어진......  인두로 말이다.
 
1336년 8월 1일
 사실을 알게 된 황제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평소에도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한 황제와 황후의 사이에는 싸늘한 분노만이 흐르고 있었다. 서희는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웃음이 담긴 입으로 말하였다. “황후의 집안이 모반을 일으켰다... 황후는 살아남을 수 없어.” “나는  황후가 될 거야. 아직도 고려가 그립다면 고려로 보내줄게.”드디어 하고픈 말을 했다는 듯 시원한 목소리로 말하는 서희에게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나는 놓쳤던 것이다. 눈물로 얼룩진 벗의 얼굴을,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벗의 몸을, 이제 정말로 혼자 남게 된 나의 벗, 서희를.
 
1337년 3월
 4년 만에 온 고려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인심 좋고 어디 나그네라도 지나가면 불러들여 밥 한 끼라도 먹이곤 했던 사람들은 없고, 집이 없어 길에서 자곤 하며 밥 한 끼 때문에 싸우곤 하는 사람들만 남았다. 멀고 먼 땅을 걷고 도중에 앓으며 찾아온 고향집에는 사람의 흔적조차 없었다. 물어물어 가족이 있는 집을 찾아가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대문을 열었다. 밖에서 볼 때는 가족들만 살피느라 잘 몰랐는데 하인들도 모두 새 사람들이었다. 누가 왔느냐 하며 사랑방에서 나오던 오라버니의 얼굴은 갑자기 굳어졌다. 오라버니는 내게로 빨리 다가왔다. 내가 오라버니를 부르려는 찰나 한 여인이 안채에서 나오며 물었다. “서방님, 손님께서 오셨나이까?” 밝게 웃으며 밖으로 나오던 그녀는 손님이 여인이라는 것에 놀란 모양이었다. 내가 새언니에게 인사를 하려는 찰나, 오라버니가 굳은 표정으로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아니오. 그저 길을 물으려는 사람일 뿐이오. 들어가시오.” 1년 동안 그 고생을 하며 고려로 온 것은 이런 얘기를 들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그 동안 신세지고 있던 주막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오라버니의 집에서 본 듯한 하인이 달려와 쪽지를 주었다. 대감님께서 아씨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요_라는 말을 남기며. 쪽지에는......‘미안하구나. 하지만 너는 이미 우리 가문에서는 죽은 사람이다. 연락하지 말아다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울음이 새어 나왔다. 문득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기씨 계집이 원 황제의 애를 뱃다더라.’ 하는 것 이었다. 기씨 여인이란 영락없이 서희였다. 서희가 생각났다. 그리워 졌다. ‘힘들다면 돌아오라’며 충분한 노자를 주었던 아이. 날 생각해주는 사람은 아버지도 오라버니도 아니었다. 벗이었다. 나는 원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그 애를 생각하며. 그 애를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