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마음』 서평 - 김보통(만화가)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기를
 
김보통 | 만화가
 
  아직 회사를 다니던 시절, 소복이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다. <고래가 그랬어>의 편집장 조대연 씨가 쓰고 소복이 작가가 말 그대로 ‘소복소복한’ 그림을 얹은 『딱한번인.생』이다. 다 읽자마자 서른 권을 주문했다. 너무 좋은 책이라 혼자만 읽을 수 없고, 그저 추천한다고 사람들이 읽을 것 같지 않아 가방에 넣어 다니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한 권씩 주곤 했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유일한 경험이다. 내 마음속 베스트셀러인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구할 수 없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만화를 시작했다. 대외적인 원인은 우울증이었지만, 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아버지는 이제 자식들 다 키우고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는데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쉬워하셨다. 그때 『딱한번인.생』이 떠올랐다. 아버지 모습이 내 모습 같았다. 나 역시 머지않은 미래에 아버지처럼 병원 침상에 누워 딱 한 번인 생, 행복을 미루고 미루며 살다 죽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만큼 소복이 작가는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작가는 모르겠지만.

  다시 시간이 흘렀다. 회사를 다닌 기간보다 더 오래 만화를 그렸다. 그사이에도 소복이 작가의 책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었다. 늘 ‘소복소복한’ 글과 그림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독자로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소년의 마음』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앞으로도 소복이 작가의 책을 고운 시선으로 읽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너무 큰 ‘시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순수하지 못해 너무 좋은 것을 보면 패배감과 질투를 느낀다. 이전 작품들도 좋았지만 솔직히 이정도로 열패감이 들진 않았다. 그래서 좋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년의 마음』은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와 상관없이 내게 큰 좌절과 고민을 가져다주었다. 어디까지나 더는 소년이 아닌 나의 비뚤어진 마음 때문이다. 그만큼 좋은 책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여성인 소복이 작가가 ‘소년의 마음’을 이야기 한다길래 의아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가, 창문도 없는 쪽방에 네 가족이 모여 살던 내 어린 시절의 마음을 들켜 버렸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커다란 달력 뒷면에 연신 볼펜 똥을 닦아 가며 낙서하던 김보통이, 한밤중 술 취한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우리 집에 숨어 오들오들 떠는 옆집 아주머니를 바라보던 김보통이, 아버지와 싸운 날이면 ‘너희끼리 잘 살아 봐’ 하며 집을 나간 (실제로는 백화점에 갔던) 어머니를 기다리며 공포에 떨던 김보통이, 드시는 거라곤 포도주와 두유, 담배뿐인 외할머니의 축 늘어진 가슴을 만지며 잠들던 어린 김보통이 그곳에 있었다.

  만일 내가 교육부 장관이라면 이 책을 교과서에 넣을 것이다. 도서관장이라면 올해 필독 도서로 선정하고, 교사라면 아이들과 함께 낭독할 것이다. 음악가라면 뮤지컬로 만들고, 영화감독이라면 투자자들을 설득해 블록버스터 영화로 제작하고, 앵커라면 뉴스 중에 돌발적으로 ‘시청자 여러분, 이 책은 꼭 읽어야 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위치가 아닌 관계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렇게 추천사를 쓰는 것뿐이다.

  어쨌든 아마도 나는 『소년의 마음』 역시 여러 권 구매하게 될 것이다. 예전처럼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아마 내가 그러지 않아도 베스트셀러가 되겠지만, 그만큼이나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