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위기를 넘기 위해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우리나라가 역사 교육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역사 과목이 독립 교과가 아닌 ‘사회과’의 일부로 편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역사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는 교사들이 역사 교육을 수행할 가능성이 제도적으로 열려 있고, 실제로 역사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 역사 교육을 하는 사례가 흔해졌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에 포함시키려는 시도나 일본이 역사 교과서를 왜곡시킨 문제가 불거지면서 역사를 소홀하게 다룬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역사 교육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국사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닫자는 정도에 머무를 뿐, 세계사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세계사는 사회과의 10개 과목과 함께 선택 과목에 포함되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암기해야 할 낯선 이름으로 가득 찬 어려운 과목이라는 생각 때문에 세계사는 다른 과목보다 선택 비율이 극히 낮다. 그로 인한 비참한 결과 가운데 하나는 요즈음 많은 고등학생들이 이집트가 어디에 있는지, 계몽주의가 몇 세기에 일어났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이른바 세계화 시대, 지구촌 시대에 다른 나라의 역사에 무관심한 것의 대가를 머지않은 미래에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물론 그것을 전적으로 제도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사와 관련된 전공 분야의 학자들이 세계사 교과서를 흥미롭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쓰지 못한 것도 세계사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게 만든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주경철 교수의 『문화로 읽는 세계사』는 자체의 내용도 흥미롭거니와 앞으로 세계사 교과서가 어떻게 쓰여야 할 것인지 그 방향을 짚어 주는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기존의 세계사책과 차이가 있다.
첫째, 기존의 세계사책에서는 대개 정치나 사법 제도의 변천과 같은 공식적인 문서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 문화는 곁가지로 설명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문화 유산을 논의의 중심으로 떠올리면서 거기서부터 정치나 경제의 이야기로 옮겨 간다.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는 『길가메시 서사시』에 초점을 맞추며, 함무라비 법전을 일종의 부록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기존 역사책의 순서와 정반대다. 이집트 문명에는 피라미드나 부부의 조각상과 같은 유물을 통해, 그리스 문명에는 소포클레스의 희곡을 통해 다가가고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독자들은 각 문명권에 친밀한 흥미를 느끼며, 점점 정치적·사회적 의미로 몰입해 들어갈 수 있다.

둘째, 기존의 세계사책에서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등의 분야로 나누어 그 분야들이 각각 독립된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사실은 어떻게 서로 관련을 맺고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지를 보여 준다. 예컨대 기차의 등장으로 바뀐 과거의 모습을 그릴 경우 기존의 세계사책에서는 증기기관의 발명이 어떻게 기차의 출현으로 이어졌으며 그것이 산업화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산업과 기술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만 다루어 왔다. 그러나 『문화로 읽는 세계사』에서는 기차의 출현이 중앙 정부의 통제를 쉽게 만들어 민족 국가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고, 시장의 개념을 바꾸어 놓아 경제 행위의 형태로 변모시켰으며, 시간과 공간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사람들의 정신적·육체적 감수성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밝힌다. 이런 방식으로 이 책은 정치와 경제가 인간 사회의 문화적 요인과 필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책의 세 번째 장점은 위에 말한 두 가지 특징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인데, 과거의 역사 사실을 총체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다시 예를 들자면, 우리는 기존의 세계사에서 절대주의가 성립하게 된 배경에 상비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배운다. 즉 이전에는 전쟁이 있을 때마다 징병이나 모병을 통해 군인들을 끌어모았지만 이제는 정규적인 군대가 항상 존재하여 그들이 국익을 수호하는 구실을 했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은 거기에서 그칠 뿐, 그 군대가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되고 있는지 조금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마우리츠 공작이 어떻게 근대적인 군대를 만들어 내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편성하고 통제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근대의 특징인 ‘기계적 합리성’이 군대 조직에 나타나도록 만들었는지 알게 해 준다.
 
이러한 여러 특징은 기존의 역사책과 비교하면 『문화로 읽는 세계사』가 지닌 매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중세의 유럽인들이 매운 맛에 열광했다는 사실과 같이 기존의 상식을 깨는 지식을 알려 준다. 더구나 이 책에서는 마녀, 음식 문화, 음악, 괴물, 사랑, 노예, 술, 디즈니의 만화 영화 등등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 꽤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더 나아가 이 책에서는 그 옛날 우리와 동떨어진 세계의 다른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고민할 거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그것을 통해 세계사의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오늘날 우리 사회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리려는 시도일 것이다.
 
반면 이 책의 단점은 역사의 흐름을 일관적으로 보여 주지 못하고 단편적인 일화를 통해 파편화한 역사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하지만 논의가 되지 않은 공백도 많이 드러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판은 이 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통해 역사를 보려는 시도 전체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러한 비판에 저자 혼자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이런 방식의 글쓰기는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으며, 역설적으로 그 단계에서조차 이렇듯 흥미로운 결실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오히려 더 많은 역사가들이 이런 방식의 세계사 쓰기에 참여해 그 공백을 매울 경우 지금 겪고 있는 세계사의 위기가 극복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희망에 찬 기대를 해 본다.
 
 
글 ·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318 북리뷰 200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