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고 경험하고 : 동시야, 놀자


 

대학교에 입학해 맞게 된 첫 방학을 무언가 의미 있게 채워 보고자 파주의 어린이도서관‘꿈꾸는 교실’을 찾았다. 그곳에서도서관장황수경선생님으로부터,‘ 동시야 놀자’라는 프로그램을 함께 꾸려 보자는 제의를 받게 되었다. 한때 아동 심리학자를 꿈꾸었을 만큼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기에,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흔쾌히 참여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 앞에 서서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또한‘동시’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거리감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막막했다. 황수경 선생님을 도와‘동시야 놀자’를 진행하면서, 순수한 감수성을 잃어버린 채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동시는 굉장히 어려운 문학이고, 흥미 없는 주제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생각을 깨어 보고자, 동시의 가장 작은 단위인‘시어’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오감을 이용한 감각놀이가 그것이었다. 검은 상자에 들어 있는 정체 모를 물건을 만져 보고, 혀에 한 방울 떨어뜨려 주는 액체의 맛과 향을 느끼고, 내앞에 있는 친구의 얼굴을 보고, 여러 가지 효과음을 들려주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 그것을 글로 표현해 냈다. 이 놀이의 가장 중요한 점은, 손끝에 만져지는 물체가 무엇인지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물체가 손끝에서 어떤 느낌을 주는지를 그대로 글로 표현하는 데에 있었다. 한 아이는 손끝에 만져지는 미역에 느낌을‘체레레 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해 냈다. 언뜻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이상하게 공감 가는 의태어였다. 이 아이는 이미 정형화된 의식 속에서 물건을 느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눈을 감고 사물을 느낀 것이었다. 같은 감각을 자극했는데도,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의성어 의태어 들을 쏟아냈다. ‘물컹물컹’‘미끄덩미끄덩’과 같은 이미 굳어 버린 어른들의 틀에 박힌 표현력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아이들의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에‘시끄러!’라며 감수성을 무너뜨리는 어른들은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김은영 선생님의?더위 먹은 날?이라는 동시를 조각조각 잘라 놓고 나만의 시를 만드는 시간을 가지고, 여러가지 동시도 들려주었다. 그 후, 시어라는 게 무엇인지 배운 아이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시를 써 내려갔다. 많은 꼬마 시인들이 출판사 건물 주변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썼는데, 어떤 친구는 시든 장미 한 송이를 보고 할머니 장미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싱싱한 그때가 그립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 어떤 친구는 사철나무의 초록색은 용감한 초록색이라고 표현했다. 한 1학년 여자아이는 오빠랑 싸운 이야기로 솔직하고 재미있는 동시를 지어냈다. 처음에 동시가 어렵다고 했던 친구들이 써낸 작품들이었다. 캔버스에 멋지게 시화까지 완성하고, 마지막 날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쓴 시를 낭송하는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떨림과 자신감은 정말 값진 것이었다. 김은영 선생님이 직접 동시를 읽어 주시고, 아이들의 질문을 받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선생님은 꼬마 시인들 한 명 한 명을 칭찬하기도 하셨는데, 그때 아이들은 부끄러워 하면서도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꼬마 시인들에게도 잊지 못할 뜻깊은 시간이었을거라 생각한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라는 부담감을 가지고 시작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순수한 감수성을 잃지 않은 아이들에게 내가 한 수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어린이들뿐 아니라 나까지 동시와 신나게 한바탕 놀 수 는 시간이었다.
 
 
민수진│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1학년. 다양한 경험과 함께했던 사람들을 소중히 여긴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 꿈이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방학을 이용해서 그 꿈을 이루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만큼이나 책, 어쿠스틱 음악을 좋아한다. 뚜렷한 목표는 없지만, 나의 길을 위해서 앞으로도 다양한 경험들을 맛볼 것이다.
 
 
 
사계절 즐거운 책 읽기 201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