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일기 2012 l 글사임당

내가 쓰는 역사 일기 대회 2012 / 단체 부문 우수상
글사임당 화명교육원 (이해형 외 31명)
지도교사: 성미경 
 
 
 
 
 
고된 시집살이(1428년 4월 3일)
 
명진초등학교 5학년 이주현
 
오늘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나이가 8살인 꼬마서방님께서는 곯아 떨어지셔서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방님을 보니 내가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이런 꼬맹이를 남편으로 삼았는지 나도 모르겠다. 겨우 서방님을 깨운 다음 서당에 보내었다. 그런데 급히 서당에 사기는 바람에 책을 들고 가지 않으신 거다. 나는 깜짝 놀러 재빨리 책을 들고 서당에 가서 전해주고 오니 시어머니께서 늦게 왔다고 혼을 내셨다.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았다. 오늘은 일이 더욱 더 많다. 먼 친척 손님이 오시는 날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께서는 나보고 뒷마당을 쓸고 나서 빨래를 하고 손님께서 드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아~ 그런 시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친정어머니 생각이 더욱더 났다. 나를 볼 때마다 언제나 웃어 주시던 나의 어머니.
그런 생각들을 하는데 시어머니께서 빨리 뒷마당을 쓸라고 닦달을 하셨다. 뒷마당을 다 쓸고 나니 영이 생각이 났다. 오늘 시집을 가는 내 친구 영이의 시어머니는 착하다고 소문이 났다고 한다. 영이 남편감은 내 친구와 나이도 같다고 하는데... 우리 꼬마 서방님을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난다. 친구가 괜히 미워진다. 갑자기 시어머니께서 소리를 치셨다. 
“니는 뒷마당을 쓰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노? 빨랑 해라”
그리고 지금 당장 빨래하고 음식을 차리라고 말하셨다. 나는 아들을 낳으면 절대 우리 시어머니 같은 그런 시어머니가 되면 안 되겠다고 다짐을 했다. 음식을 겨우겨우 차리고 빨래까지 하고 오니 서방님께서 서당에서 돌아오셨다. 방으로 들어와서 배고프다고 떼를 쓰셨다.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서방님을 밀쳐내 버렸다. 서방님께서는 ‘으앙’ 울어버리셨다. 울음소리를 들은 시어머니께서 달려오셔서 나에게 꿀밤을 한대 먹이시고는 서방님을 위로하셨다. 신경질이 났다. 잘못은 했지만 하루 종일 일한다고 힘든데 떼를 쓰는 것도 모자라서 야단까지 맞게 한 서방님이 너무 미워졌다. 서방님께서도 짜증나는지 내가 다리려고 갖다놓은 빨랫감을 발로 밟아 더러워지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간식을 먹고 도망치듯이 밖으로 놀러 나가버렸다. 시어머니께서 오셔서 빨랫감이 더러워졌느냐면서 또 혼내셨다. 이 고된 시집살이가 하루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1610년 5월 4일
 
부산와석초등학교 5학년 서유리
 
우리 여자들은 대문 밖을 나서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내가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고 대문 밖에 나갔는데 그것을 본 이웃들이 나만 쳐다보았다. 집으로 들어와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는 그렇게 싸돌아다니지 말고 집 안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지금 놀지도 못하고 조용히 뜨개질을 하고 있다.
난 손재주가 없어서 뜨개질을 하는데 바늘에 계속 찔리고 엉망으로 되어서 어머니에게 꾸중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뜨개질을 잘 하게 되었다. 나는 뜨개질을 잘 하는데도, 나이가 들었는데도, 항상 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내일은 단오이기 때문에 많이 놀 수 있다. 내가 왜 단오를 기대하냐면, 2년 전, 언니가 5월 5일에 밖에 나갔다 왔는데 정말 예뻐져서 돌아왔다. 나는 정말로 궁금ㅎ서 언니에게 물어보았더니 단오에는 창포에 머리를 감고, 봉숭아를 물들였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 눈은 반짝반짝거렸다. 
그리고 언니가 한 가지 비밀을 숨겼는데 그것은 바로 언니가 그네뛰기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오 숨겼냐고? 언니가 그네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잘생긴 남자가 자신에게 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잘생긴 남자는 서당에서 최고로 공부를 잘 하는 모범생 이도령인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로 황당하였다. 왜냐하면 난 언니가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참하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잘생긴 남자가 언니에게 반했는데 언니가 청혼을 거절하였다. 역시 언니는 대단하다.
어쨌든 언니는 처음으로 밖에 나가서 그 일을 겪었을 때가 15살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15살이다! 내일은 창포에 머리도 감고, 봉숭아도 물들이고, 그네뛰기도 한다. 내일이 정말 기대된다.
 
 
 
뚝딱뚝딱 무엇을 짓는 사람들
 
서남초등학교 6학년 남유지
 
아침부터 잠이 깼다. 너무 시끄럽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지금도 농사일을 하시러 가시고 지금은 동생과 나밖에 없다. 얼른 급하게 밥을 먹고 집을 나서니 이상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무엇을 지고 다닌다. 
아, 저기에 내 친구들이 있다. 벌써 왔나보다. 나도 친구들 옆에 가서 구경을 했다. 뚝딱뚝딱 무언가를 짓고 있더니 갑자기 멈추었다. 왜 그런가 하면서 계속 지켜보았다. 아, 잠시 쉬고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쉬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오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짓고 있는지 아니?”
“아니요~ 저게 뭔데요?”
“지금은 예비용 궁궐을 짓고 있어, 진짜 궁궐은 저~기 저~기 한양에 있지”
“예비용 궁궐이요?”
“응, 예비용 궁궐, 왜적이 와서 궁궐을 없애 버릴 때 임금님이 와서 여기에 머무르는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어이~ 빨리 와서 짐 좀 날라”
“자, 나중에 궁금한 것을 물어 보렴”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저 내 귀에는 ‘임금님’, ‘예비용 궁궐’이라는 말밖에 안 들어온다. 동생이 날 부른다. “언니 오늘 저녁은 된장이랑 밥이래, 빨리 들어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식단이긴 하지만 내 정신은 뚝딱뚝딱 짓는 곳으로 가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었다.
 
 

망한 날
 
부산와석초등학교 6학년 박범채
 
고려에서 조선으로 나라 이름이 바뀌었다. 전에 살던 고려가 없어지니까 무언가 아쉬웠다. 하지만 새로운 이름이 생겨서 기분이 좋기는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되었으면 왕 밑에 사람들이 왕이 되겠다고 서로 싸움이 일어났을 수도 있겠다. 
그것이 궁금해서 친구들이랑 왕이 살고 있는 성으로 들어가서 상황을 보았다. 내 예상대로 성 안에서는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조선이 되어서 뭔가가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활 모습이 바뀌지는 않았다. 아빠는 어김없이 농사를 지으러 간다. 나는 서당에 가서 글공부를 해야 한다. 너무 가기가 싫다. 왜냐하면 또 종아리를 맞을 것 같기 때문이다. 종아리를 맞을 것 같은 이유는 훈장님에게 너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서당을 땡땡이 쳤다. 
아빠의 눈치를 보면서 놀았다. 그 다음에 친구들이랑 냇가에 가서 물수제비뜨기를 하였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횟수가 많았다. 그리고 집에 갔는데 아빠가 매우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겁이 나서 내 방에 들어가 숨어 있었다. 아빠가 나를 불러서 “왜 서당에 가지 않았냐.”고 물으셨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빠한테 혼이 많이 나고 울면서 잤다.
 
 

1393년 5월 4일
 
명진초등학교 6학년 서선영
 
드디어 나라 이름이 조선으로 결정되었다. 옛날까지는 고려였는데 오늘부터 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나라 이름이 바뀌어서 설레기도 하고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아서 낯설기도 하였다. 글도 왠지 나라가 새롭게 다시 나아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왜 조선이라고 국호를 정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어른들께 여쭤보니 어른들은 고려가 멸망하고, 왕 자리에 태조 이성계가 오르자 태조 이성계는 고려가는 국호 대신 조선으로 국호를 정했다고 말씀하였다.
글도 나라면 국민들에게 국호를 바꾸어도 되는지 조사를 해서 바꿀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임금의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것이기 때문에 국호를 마음대로로 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모여서 국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들어보니 어른들은 대부분 거의 태조 이성계가 국호를 바꾸었다고 불만이 많이 있었다. 태조 이성계 임금님이 마음대로 국호를 바꾸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라 이름이 바뀌어서 왠지 모르게 약간 기분이 들떠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 쓰이는 우리 글
 
학사초등학교 6학년 이해형
 
나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겨우 1주일 만에 그 글을 다 깨우쳤고 지금도 편지와 일기에 많이 쓰고 있다. 그런데 서당에서는 2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훈민정음을 가르치지도 않고 있다. 그래서 서당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왜 아직도 훈민정음을 안 쓰냐고. 그러자 그 대답은 뜻밖이었다. 너무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은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을 낮춘 말인 ‘언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너무 깜짝 놀랐고 화를 내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임금님이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우리 백성들을 위해서 만든 글이 지금 쉽다는 이유로 천대받는 것이다. 나는 서당에서도 훈민정음을 읽는 소리가 들리기 바랐는데도 말이다. 
오늘은 그 재미있던 비석치기도 안 하고 농사일도 안 도와주고 그냥 방 안에 누웠다. 너무 실망감이 커서 더 이상 일기 쓰기도 싫어질 뻔 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임금님도 신하들의 반대는 못 물리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