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우주의집>




『우주의 집』은 한낙원과학소설상 1회부터 5회까지 수상 작가들이 사회적 약자와 관련한 단편들을 하나씩 써서 펴낸 SF 앤솔러지입니다. 동물권, 장애,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 탈북민 등 우리가 자주 접하는 사회 이슈들이지만 SF적 시공간으로 옮겨 놓으니 뭔가 새로운 눈으로 낯설게 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인간이 서 있는 자리를 색다른 시선으로 살피면서도 존재의 근원에 접근해 가는 것이 SF의 매력이라고, 이 작품집을 읽은 오세란 평론가가 이렇게 말했지요. 작업에 참여한 작가들은 서로의 작품들을 어떻게 읽었을까요? 이메일로 주고받은 <우주의 집: 작가가 묻고 작가가 답하다>를 여러분께 풀어놓습니다.

1. 완벽한 꼬랑내-문이소 작가님께 묻습니다
Q. 작가님도 어떤 동물과 (꼭 개나 고양이 같은 전통 반려동물이 아니어도) 운명적인 만남을 가져본 적 있으신가요?
A. '운명적인 만남'을 '다른 방향에서 삶을 보게 한 계기'로 풀어 말한다면, 있어요. 두 가지의 죽음이에요. 첫 번째는 열한 살 때 3년을 같이 살았던 재롱이가 병으로 죽어 가는 걸 봤을 때예요. 「완벽한 꼬랑내」 도입에서 잠깐 언급된 부분인데요, 재롱이가 죽어 가면서도 저를 보니까 꼬리를 흔드는 거예요. 꼬리를 흔드니까 기운이 다 빠졌는지 입이 헤벌어지면서 혀가 쑥 나오더라고요. 그 모습이 못 견디게 가슴 아팠고 무서웠어요. 쓰다듬어 주다가 그냥 도망쳤죠. 다시 재롱이에게 갔더니 이미 숨이 끊어졌더라고요.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요, 그때 처음으로 가슴이 무너졌어요. 그 후회가 지금의 자리로 저를 이끈 원초적인 힘 중에 하나예요. 저는 요즘 생의 끝자리에 있는 분들 곁에 머물면서 그분들이 한 번 더 웃을 수 있게 재롱을 부리며 살고 있답니다. 이런,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두 번째 운명적인 만남은 다음 기회에.

Q.  동물권, 생명권에 대한 고민이 혹시 먹을거리로 소비되는 소, 돼지 등 축산가축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 적 있으신가요?
A.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가, 학교에서 봄소풍을 갔어요. 학교 뒷산을 넘어 쭉 걸어 가니까 하얀 천으로 만든 커다란 집이 여러 채 보였어요. 여기가 뭐 하는 곳이냐 물었더니, 양계장이래요. 양계장? 양계장 주인이 나와서 인사를 했고, 우린 양계장으로 들어갔어요.  눈이 시릴 만큼 밝은 조명,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지 않으면 닿지 않을 높이까지 쌓인 닭장, 펄펄 날리는 허연 털,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축축하고 고약한 악취. 그리고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소리. 닭들이 내는 소리가요, '꼬끼오' 혹은 '꼬꼬댁'이 아니었어요. '끼익', '끄엑', '칵' 같은 외마디 소리에 가까웠죠. 기념이라며 양계장에서 준 달걀 세 알은 받지 않았어요. 딱 거기에 멈춰 있네요, 저는. 

Q.  실험동물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겁지 않고 너무나도 재미있는 스토리 전개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실험동물 말고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권리장전도 요즘 만들어졌다는데요. 그것에 대해 써 보실 생각도 있으신지요?
A. 로봇윤리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은 「마지막 히치하이커」와 「목요일엔 떡볶이를」에서 어느 정도 했는데요, 개발자와 사용자 윤리 이야기를 다뤘어요. 그 이상은 좀 더 공부해야 이야기가 찾아올 것 같아요. 당분간은 어렵지 싶네요. 요즘엔 기술 발달로 인해 소외되는 일상의 조각들이 자꾸 보여요. 무인점포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는 모습, 무인 계산기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 신기술을 습득하지 못해 부끄러워하는 모습 등등요. 점포 계산대 일자리도 확연히 줄었죠, 그 부분도 눈에 자꾸 들어오고요. 그런데 이것도 개발자와 사용자 윤리에서 접근할 듯해요. 아이쿠야, 갈 길이 멀군요.
 
2. 우주의 집-고호관 작가님께 묻습니다
Q.  인력 비행을 설명하는 장면의 디테일이 너무 좋았습니다. 인문계 졸업자로서 부럽기도 했고요. 이런 과학지식은 어떻게 얻으셨는지 궁금해요. 
A. 감사합니다…만 사실 거의 상상에 의존해서 쓴 거라 실제로 가능할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무중력 상태에서 인력 비행은 가능하겠지만, 속도나 묘기나 그런 게 묘사한 것처럼 될지는 모르겠네요. 과학 지식이라고 해 봤자 사실 이공계든 인문계든 저희 같은 일반인은 어차피 교양 수준에서 알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별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소설에 필요한 지식이 있다면 찾아서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Q.  청력이 약한 아이들은 상대의 입모양이나 동작에 더 민감한 법인데, 에데르가 한동안 우주에게 무심하게 굴었던 게 사실은 정말로 우주를 무시했던 것 아닐까요? (그러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현실 사춘기 아이들이라면 그랬을 것 같고요.)
A. 이것도 되게 고민했던 건데요… 넓지 않은 우주정거장에서 한참 동안 둘이 상대에 관해 모른 채로 지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안 될 것 같아서… 일부러 우주가 사춘기라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느니, 각 나라에서 하는 개별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서로 잘 모를 수 있다느니 하는 내용을 슬쩍슬쩍 넣었는데요. 한 가지 설명을 추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둘 다 사춘기 소년이니 에데르도 그런 감정이 있을 수 있겠네요. 유명한 존재에 대해 괜히 무심한 척한다거나 호기심이 생기는 일은 왕왕 있으니까요. 
   
Q.  우주의 미래, 우주가 어떻게 성장할지 무척 궁금합니다! 우주의 신체적 한계를 보완할 기술이 개발되어 지구에서 살 수 있게 될까요? 아니면, 달에 정착하여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낼까요? 혹은 위성지구의 시조가 될까요?
A. 저도 궁금합니다! 외골격 로봇 같은 것을 입고 지구에서 사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우주에 적응한 첫 번째 신인류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인간이 우주 개발을 계속 진행해서 여기저기로 뻗어 나가야겠지만요. <플라네테스>라는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에 이런 말이 나와요. 달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가 하는 말인데, “국가요? 아, 학교에서 배웠어요. 지구에는 그런 게 있다면서요.” 대강 이런 요지였어요. 이렇게 우주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와 개념이 아예 다를 것 같고, 어떻게 다를지 궁금합니다.

3. 실험도시 17-남유하 작가님께 묻습니다
Q.  작가님의 열일곱 살은 어땠나요? 그때의 모습으로 평생 살아가게 해 주겠다면 작가님의 선택은요?
A. 오,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아니,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열일곱 살의 저는 천둥벌거숭이 같았거든요. 얼마나 튀는 줄도 모르고 형광색 후드티를 입고 다니지를 않나, 수업 시간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떠들다가 춤도 못 추는데 체육대회 치어리더로 뽑히질 않나. 한마디로 흑역사의 연속이었어요. 게다가 여드름투성이라서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고문에 가까운 압출을 견뎌야 했어요. 잔혹한 호러를 사랑하는 어두운 마음은 어쩌면 여드름 압출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지금도 가끔 생각해 보곤 한답니다.

Q.  헤베시 외에도 다른 실험도시가 있다던데, 어떤 곳인지 몹시 궁금합니다! 그리고 다른 실험도시도 폐쇄형인지, 왜 폐쇄형으로 운영되어야만 하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A. 헤베시 외에도 다른 실험도시가 있지요. 여자들만 사는 도시, 남자들만 사는 도시, 노인들만 사는 도시, 채식주의자만 사는 도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만 사는 도시, 마이너스 6.5 디옵터 이상의 고도근시만 사는 도시, 외계행성인 중에서 다리가 6개 이상인 종족만 사는 도시… 실험도시들은 대부분 국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고요, 모두 폐쇄형입니다. 모든 입주자들에게 동일한 조건을 줌으로써 실험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명목이지만, 글쎄요. 정보를 차단하고 통제하기 위한 국가의 음모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사실 진지하게 구상을 마친 새로운 실험도시가 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작품으로 만나 뵙도록 할게요.

Q.  요즘 지구 환경을 보면 오래 살고 싶은 욕구와 환경 문제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인간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건 환경오염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빨대나 일회 용기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요. 그게 무슨 소용 있겠어요. 저는 오늘 라면을 먹었고 라면 봉지와 스프 봉지, 플라스틱 생수병, 음식물 쓰레기 등등 수많은 환경오염을 저질렀는데요. 사소한 일이라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태평할 때는 아니라는 경고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인류세 시대고, 인류세를 대표하는 화석이 닭뼈와 플라스틱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는 정말 충격을 받았죠. 그때부터 치킨이 별로 안 먹고 싶더라고요. 결론은 오래 살고 싶으면 바뀌어야 한다는 거예요. 아니면 지구가 먼저 병들어 죽고 말 테니까요.

4. 묽은 것-최영희 작가님께 묻습니다
Q.  읽으면서 계속 마음이 저릿저릿하고 마지막에 묽은 여문이 진짜 여문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만나게 해 주지는 않으셨더라고요. 혹시 이렇게 끝을 내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저도 여문이 진짜 여문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다섯 살 여문이 나이 든 여문과 재회하는 장면을 그리면 감동적이지 않을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여문은 일본 패망 후 제3국에 자리를 잡고 살다가 (우리나라에 왔을 수도 있고 끝내 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자연스레 까치울의 존재를 잊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감동적인 해후보다는 ‘기다림’으로 작품을 매조지었고, 독자들의 마음에도 안타까운 기다림을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역사적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으니, 기다림이라는 흉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요. 까치울은 진짜 여문이 끝내 되찾지 못한 열다섯 살 인생으로 남아 있는 거죠. 

Q.  여문의 본체, 진짜 여문이 죽으면 묽은 여문은 소멸되나요? 아니면 기억으로 남나요? 진짜 여문이 죽기 전 묽은 여문을 만나기를 바라는 1인입니다
A. 작품의 내적 논리로는 진짜 여문이 죽어도 묽은 여문은 까치울의 실재로 남아 있게 됩니다. 누군가가 영원히 되찾지 못한 열다섯 살 인생으로 남아 있는 거지요. 묽은 여문이 사라지는 조건은, 진짜 여문을 만나 그 안으로 다시 녹아드는 길밖에 없으니까요. 저도 작품은 ‘기다림’으로 매조지었지만, 까치울의 여문과 진짜 여문이 만났으면 합니다. 탈고 당시 결말을 써 놓고 제 작품이 슬퍼서가 아니라 이 역사가 화나고 억울해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Q.  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묽다’에는 액체, 유동성이 따라와요. 그래서인지 여문을 보면서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물방울 인간이 떠올랐고요. 눈물을 가두어 만든 인간,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최영희 작가님이 생각하는 ‘묽다’, ‘묽음’의 이미지 혹은 의미를 듣고 싶습니다. 
A. ‘묽다’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묽음이야말로 작가의 영역이라 생각하거든요. 칼 같은 진실, 선명한 팩트는 작가의 몫이 아니라 언론과 역사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들은 언제나 묽은 진실을 포착하고, 그 안에서 잊히고 상실된 의미를 찾아내 왔다고 믿습니다. 제게 묽음이란 한눈에 파악되지 않고 수차례 되짚어 보아야 알 수 있는 무엇입니다. 무심히 지나치고 나면 내내 아릿한 통증과 궁금증으로 남아서, 끝내 작가들의 발길을 제 쪽으로 돌려놓는 존재들이고요. 

5. 문이 열리면-윤여경 작가님께 묻습니다
Q.  시간을 소재로 한 작품을 자주 쓰시는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시간은 무슨 의미이며, 어떤 장치인가요?
A. 바야흐로 과학 문명 덕분에 육체적 욕구는 해결되는 시대가 왔고 이제 정신적 욕망이 커지는 시대라서요. 가상현실 안에서 정신적 욕망의 이상향인 시공간을 그려내는 것이 인류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Q.  시간 소재 SF중에 혹시 롤모델로 삼으시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A. H.G. 웰즈의 『타임머신』입니다. 수십억 년의 시간 여행이라는 스케일이 너무 멋집니다. 행성도, 태양도 생명이고 인간도 생명이라는 프렉탈 구조를 잡아낸 것이 아름답습니다.

Q.  작가님은 타임리프물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으실 것 같아요. 영원, 과거, 현재, 미래, 때, 순간, 찰나, 시각 등등 다양한 시간표현과 시간 개념이 있잖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혹은 좋아하는 시간 표현이나 시간 개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없는 시간, 즉 ‘유크로니아(이상적 시간대)’요. 없는 과거로의 여행, 없는 미래로의 여행. 타임리프물 SF는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현실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도구로서 기능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