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임꺽정과의 만남 : 안효순

제3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독서감상문대회
중고등부 대상 수상작
 

 
임꺽정, 그의 이름은 여전히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나는 단숨에 그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건 나도 임꺽정과 한편 이고 싶다는 , 그의 행동에 박수를 쳐주며 나도 그와 특히 이라는 일체감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너무나 생각 없이 그들 속에 들어갔지만 나는 그 안에서 많은 경험과 생각들을 함께 누리며, 그게 단순한 영웅심리가 아니라 진정에서 우러나오 는 임꺽정에 대한 신뢰였음을 깨달았다. 그랬다. 임꺽정은 너무나 친숙하게 나에게 다가왔고 , 나는 거부할 수 없는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반해버렸다. 나는 임 꺽정에 대한 흥미로움을 거기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그를 알고자 이 책을 펼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되어 주었다.
 
양주 쇠백정의 아들 임꺽정. 백정이라는 천한 신분만으로도 나는 그가 결코 순탄치 않는 일생을 보내게 된다는 걸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와 꺽정이의 인물됨 앞에서 어떤 숙명적인 암시를 받았음은 말할 것 도 없다. 그것은 나를 더욱 큰 흥분 속으로 끌어들였고 나는 복잡한 마음을 주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때때로 임꺽정이 되어 신분적인 차별과 학대를 간접적으로 받으면서 봉건사회의 모순에 대해 강렬한 저항과 반발심을 갖게 되 었다. 특히 꺽정이 부자가, 애매한 죄로 거리송장이 된 양반에게 관을 해주었다는 이유로 선비와 양민들에게 손가락질 을 받고 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신분적 갈 등을 겪으며 비로소 나는 그 시대의 모습과 임꺽정이라는 한 인물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이 사건이 임꺽정의 가슴 속에 양반 중심 사회에 대 한 불만이 싹트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갑자기 꺽정이가 그의 어머니와 장래 일을 의논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내가 크거든 상감 할라오.'하던 어린 꺽정이의 당찬 결심, 그 앞에서 나는 왠지 모를 서글픈 맘이 들었다. 그건 아직 세상을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너는 천인이기 때문 에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꺽정이 어머니의 체념을 나 역시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특히 '의형제편'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건 아무래도 곧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의 삶과 도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 황을 연출하여 흥미를 자아냈기 때문인데, 그 당시 민중들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이해시키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 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그들은 부당한 수탈과 억압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우리 민중의 모습을 대표하는 사람들 이라 여겨졌다. 이봉학과 박유복, 그리고 임꺽정 등은 잘못된 세상이 만들어낸 불행한 인물들임에 틀림없다. 그건 누구의 책임이 아니 라 그들이 타고난 운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양반의 세상에서 성명 없는 상놈들이 기 좀 펴고 살아보려면 도둑놈 노릇밖에 할 게 없다는 꺽정이의 말은 지배계급에 의해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민중들 의 심정 을대변하였던 것 같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 민중들이 신분적 차별과 소외감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에 대해 깊이 통감할 수 있었다. 나는 얼마나 이기적으로 그들의 생활을 해석했으며, 우매한 그들의 모습을 비웃었던가. 실 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새롭게 나와 마주하는 많은 등장인물들과 사건에 대해 진정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유리하 게 돌아갈 때 느껴지는 강한 통쾌감과 그 떨림은 아직도 내 가슴을 떼  만든다. 특히 장통방사건과 평산하고 싶었이 그 랬는데, 우연히도 두 사건 다 꺽정이 부하의 배신으로 생겨난 사건이라 씁쓸한 마음이 없지 않다. 진정 나는 그들 속에서 삶의 생동을 느낄 수 없었다. 그때의 그 긴장감은, 그리고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리는 그 자신감은 나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와 함께 도적과 영웅 사이를 방황하며 어떤 스릴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 고 민중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없었고 , 망각하고 있던 나의 애족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계속적인 승리만을 믿고 우쭐대기만 하던 나도 서림이의 배신 앞에선 곽오주의 말대로 큰코 다치게 되었 다. 나 역시 꺽정이처럼 서림이를 신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죄에 대해 너그러울 수 있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 힌다는 말이 이런 때 이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그때의 그 분한 마음이 아직도 지워지지가 않는다. 평소 서림이와 앙숙 인 미련한 오주가 용해 보이지까지 했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음이랴. 사실 이런 사건의 전개보다 작가가 의도한 복선의 수법을 엿보는 것이 더욱 흥미로웠다. 도회청에 불이 나고 별안간 꺽 정이가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난 한온이의 꿈, 그리고 혼자 남은 오가가 도망하는 부하들을 무심하게 내버려두는 장면은 꺽정이의 최후에 대한 불길한 암시룰 준다. 이와 같은 복선은 갖바치 선생을 통해 많이 나타나 있었다. 나름대로 나중 에 있을 사건을 추리할 수 있어서 즐겁기도 했지만 불행한 결말을 앞에 두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숙연해졌다.
 
어쩐지 지금 내가 어느 새 그들 속에서 뛰쳐나와, 일방적이기는 하지만 어떤 고백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잠깐 멋 쩍어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최후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미안하기도 하다. 임꺽정, 그의 활약이 무엇보다 빛이 나는 건 그가 의적의 이름으로 민중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 전히 임꺽정이란 인물에대해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건 단순히 임꺽정에게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수탈과 극심한 가난을 견디며 살아온 숱한 민중들과 그들의 삶을 향한 것이다. 잃어버린, 그리고 잊어버린 우리 조선의 것, 나는 이것이 나에게 다시없는 만남이었을 줄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