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달려라 아비'

‘김애란’ 작가의 이름을 처음 접한 계기는 대산대학문학상을 통해서였다. 학교 전산실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컴퓨터를 켰다. 소설부문 대상, 김애란. 심사평에는 ‘현대인의 익명성을 주제로 등장인물들 간의 다름을 구분해 냈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똑같이 만들어 보이는 대목이 압권이다’, 라고 적혀 있었다.

그 후로는 취업 준비와 미국으로의 교환 학생 지원 준비를 하며 남은 대학 시절을 보냈다. 타국에서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나에게 정직하자’ 라는 소박한 깨달음 하나로, 나는 전공이었던 영어를 뒤로 하고 예술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올해 어느 봄 날, 한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낯익은 이름과 맞부딪쳤다. 그 부딪침은 아주 강렬해서 곧 몇 년 전의 심사평이 되살아 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스물 셋의 나이에 등단을 하고 스물여섯의 나이에 작품집을 낸, 나와 동갑인 작가를 향한 치졸한 질투심에 결국 그 책을 집어 들지 못했다. 무슨 인연인지 독후감 도서 목록사이에서, 순금으로 만들어진 손잡이가 유독 반짝이는 그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다시 보게 되었고, 그제야 손잡이를 딸깍 돌려, 김애란 작가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다.

공간의 재해석을 통한 현대성의 통찰

무엇보다 김애란 작가는 공간의 재해석을 통해 현대사회의 특성을 형상화하는 통찰이 탁월하다. 데뷔작 ‘노크하지 않는 집’에서 소재가 되는 이 ‘집’은 다섯 개의 방이 붙어 있고 공동 화장실과 복도가 있는 주택이다. 그들은 서로 마주치지 않기 위해, 복도를 이용하는 누군가가 방에 들어가 문 닫는 소리가 날 때까지 방문을 열지 않는 등의 암묵적인 규칙 안에서 살아간다. 김애란에 의해 여관식 자취방은 ‘익명성과 인간소외’라는 현대 사회의 코드를 풀어내는 기호로 탈바꿈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 편의점은 생필품을 제공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뛰어넘어, 불특정 다수의 현대인들이 접합을 이루었다가 소통하지 못하고, 다시 개별화된 원자들로 방사되는 공간으로 해석된다.

그녀의 작품에서 재해석되는 장소들은 여러 사람과 변기를 같이 쓰며 무던히 살아내야 하는 곳이거나, 편의점과 같이 그저 잠시 머물렀다 가는 일상의 장소들이다. 일상의 장소들이 작가의 통찰을 세례 받아, 주제의식을 형상화해가며 이야기가 살아 움직인다. 그렇다면, 내가 재창조해야 하는 일상의 공간은 어디일까.

나는 작년 말부터 분당에서 강남까지 버스를 타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러 다니고 있다. 소설 공부를 하고 있는 한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생활비를 번다. 강남에 가기 전 양재를 지나는데, 양재역 앞에는 늘, 다리에 고무를 칭칭 동여맨 아저씨가 엎드린 채 구걸을 하고 계시다. 비가 올 때를 제외하고 거의 매일 나오시는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아저씨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아저씨에게 한 두 마디 건네기 시작했다. 꼭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에 있기 답답해서 나오신다는 것을, 아스팔트의 열기 때문에 여름보다 차라리 겨울이 낫다는 것을. 가끔 아저씨의 바구니에 있는 돈을 훔쳐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저씨와 점차 친해지며 아저씨는 내가 도와줘야 하는 사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바뀌어 간다.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제각기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는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편견 없이, 긍정적인.

김애란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선은 객관적이지만 차갑지 않다. 그녀가 창조해 낸 주인공은 자신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묻는 편의점 주인에 질려 이용하는 편의점을 바꾸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에 대한 충분한 아날로그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진짜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진다. 또한 얼굴 대면하기를 피하는 다른 네 여자들에게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하고 싶어한다. 김애란 작가의 이야기 속 화자에게는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가 원망의 대상이 아닌 ‘돌아오는 길을 잃은’ 사람이 되거나 (사랑의 인사),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지표상의 위치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된다 (달려라, 아비). 이는 화자가 운명이나 과거로부터 지배받지 않겠다는 긍정의 발로이다. 화자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해 원망의 감정에 연루되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한다. 더 나아가 스스로도 객관화하며 해부한다(나는 누구인가). 그것은 화자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주체로서의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은 자기표현 이상의 것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나의’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것이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객관화되지 못할 때, 독자는 공감하지 못하고, 나만의 글로 남겨지는 것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타인을 말하듯, 멀찍이 떨어져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김애란 작가의 고유한 시선이자, 그녀가 가진 좋은 역량이다. 그녀는 내게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대상에 대한 어떤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작가는 자기 자신의 사유를, 감정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