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일기 l 내가 쓰는 역사일기 : 조윤성

내가 쓰는 역사 일기 대회 2011 / 개인 부문 장려상
충남 두마초등학교 5학년 조윤성
                           
          

                
<645년 5월 10일 고구려 안시성> 
 오늘도 나는 우치와 같이 경당에 갔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경당이 시끌벅적 하여서 친구 건보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건보가 당나라군이 쳐들어 왔다 하였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수나라가 30여년 전에 침입해 와서 그때 피해가 정말 대단하여 지금도 계속 복구하고 있는 성들도 많다. 게다가 전쟁을 하였을 때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나는 경당에서 공부하는 내내 단지 소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645년 5월 18일>
 경당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옷을 입고 칼을 찬 군사들이 들어왔다. 무리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스승님에게 무슨 말을 하자 스승님은 깜짝 놀라셨다. 나는 속으로 누굴 잡아가려나? 하고 생각하였지만 잡아가는 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스승님은 “15살 이상인 학생은 밖으로 나가 보라.”고 하셨다. 
 17살인 나와 15살인 우치를 비롯해 15살을 넘긴 학생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성주님이 계신 곳까지 갔다. 모두 모이자 성주님께서

 “나는 이곳 안시성주 양만춘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자랑스러운 대고구려의 백성들이다. 지금 고구려의 요새가 당나라군에 함락되었다는 전갈이 왔다. 요동성이 함락되었으니 다음 목표는 우리가 될 수 있다, 너희 모두는 모두 15세이상이니 나라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따라서 너희는 목숨을 아끼지 말고 고구려를 지켜내어라. 이제부터 너희는 경당이 아니라 이곳에 모여서 군사훈련을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순간 겁에 질렸다.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우치가
 “형, 형도 무섭지? 나 정말로 무서워. 하지만 고구려를 구할 수 있다면 목숨을 아끼지 않을 거야!”
라고 하였다. 
 그 말에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645년 5월 23일>
 훈련을 한지 어느덧 나흘이 지났다. 장군님이 웬일인지 훈련을 하지 말고 그늘에 모여서 쉬고 있으라 하셨다. 다른 동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양만춘 장군님께서 나오셨다.
 “자, 모두 주목! 정찰병의 보고에 따르면 당나라군이 백암성으로 갔다 한다. 백암성으로 갔으니 우리는 평소보다 몇배 더 훈련강도를 높일 것이다.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훈련에 임하라. 고구려의 운명은 그대들 손에 달렸음을 잊지 말라.”
 나는 그때 정말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고 생각하였다. 많은 동무들도 그렇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645년 5월 25일>
 밤까지 훈련을 하느라 일기 쓸 시간이 많이 줄었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든 훈련이었다. 대부분 목검으로 잘 훈련된 장수들과 대련을 하는데, 정말 많이 맞았다. 목검으로 맞고, 발로 차여 멍든 곳이 어찌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훈련을 해야 당나라군과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특별했던 훈련이었다. 진짜 철갑옷을 입고 칼과 창으로 직접 연습을 하였다. 갑옷이 무거운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입어보니 정말 무거웠다.
 옆을 보니 우치는 벌써 곯아 떨어지고 말았다. 우치는 나처럼 칼을 든 보병이 아니라 활을 쏘는 궁수이다. 맥궁을 들고 화살을 쏘는데 하루에 1000발을 쏘아 500발을 맞혀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남아서 계속 화살을 쏘아야 한다. 어쩌면 형인 나보다 우치가 더 힘든 훈련을 하는 것 같다.

<645년 6월 10일>
 백암성이 함락되었다고 한다.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다니 고구려의 수치이다. 지난날 수나라 수양제가 113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성을 공격했을 때도 항복하지 않았는데, 30만군이 왔다고 항복을 하다니 백암성주는 겁쟁이인 것이 확실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배신을 하는 사람이다. 딱 백암성주다! 분명히 백암성주는 당태종에게 항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려 했을 것이다.
 백암성이 빨리 뚫리는 바람에 당나라군이 예상보다 빨리 올 것 같다. 사람들 말로는 족히 20일이면 들이닥칠 거라고 한다.
 
<645년 6월 26일>
 드디어 당나라 놈들이 우리 안시성으로 쳐들어왔다. 안시성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성을 지키자고 다짐했다. 모두 성을 자신의 몸처럼 아낄 것이다.
양만춘 장군님께서는 성위에 올라가셔서 당태종에게 
 "이놈! 아버지와 형제들을 죽인 놈이 여기까지 무슨 욕심으로 왔느냐?"
라고 큰소리로 말하셨다. 정말 통쾌하였다. 하지만 통쾌하지 않은 사람있었다. 바로 당태종이다. 당태종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지휘봉을 땅에 냅다 던지고 칼을 뽑았다.
 "양만춘, 네놈을 산 채로 땅에 묻어주겠다."
 당태종의 공격 지시에 당나라군은 발석거로 성을 공격하였다. 돌이 날아와 군사들을 맞혔다. 큰 돌들이 성벽을 칠 때마다 몇 사람씩 성 아래로 떨어졌다. 웬만큼 성에 피해를 줬다고 여겼는지 이번에는 궁수부대가 활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그 활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당군은 틈을 주지 않고 당차, 공성탑, 운제, 소차 등으로 공격을 하였다. 
 우리 고구려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뜨거운 기름을 붓고, 돌을 던지고, 활을 쏘며 성벽으로 올라오는 적들을 창이나 칼로 공격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당나라군이 물러가자 여기저기에서 신음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중에 눈을 다친 사람, 다리가 없어진 사람도 있었다. 역시 전쟁은 무시무시한 것이다.

<645년 7월 8일>
 불행 후에는 행복이 온다더니 그 말이 맞나보다. 고연수, 고혜진, 고정 장군이 이끄는 15만 군사가 우리를 도우러 왔다. 이제 우리가 이길 것이다. 성에서 계속 방어를 하면 적들은 스스로 물러날 것이다. 당나라군이 하루에 2~3번 공격해 오는데, 이제 수가 많아 막기 한결 편할 것이다. 전쟁이 생각보다 빨리 끝날 것 같다.

<645년 7월 9일>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고연수와 고혜진이 벌판에서 당나라군과  싸웠는데 대패를 하고 말았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양만춘 장군께서 그토록 말렸는데 무시하고 군사 수만 믿고 싸우려 하였다가 결국 대패를 하였다고 한다. 내가 만약 장군이었다면 적들이 식량이 떨어져 스스로 회군할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이미 지난 일을 두고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645년 7월 19일>
 당나라군도 지쳤는지 공격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무너진 성벽을 보수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고구려 성벽은 산비탈에는 바깥쪽에만 벽을 쌓고, 안쪽에는 돌로 채웠다. 평평한 곳은 양면에만 벽을 쌓고 안쪽에는 돌을 채워 넣었다. 여기서 아랫부분은 계단처럼 쌓다가 일정한 높이가 되면 수직으로 쌓았다. 내일도 제발 오늘처럼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645년 7월 12일>
 내 바람이 하늘에 전해졌는지 오늘도 당나라군이 공격하지 않았다. 오늘은 안시성 중앙에 있는 절에 가서 전쟁이 빨리 끝나 고구려가 편안해 지기를 바라면서 예불을 드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을 공동무덤에 안장시키고, 우리 고구려 사람들이 신령스럽게 여기는 동물 사신(현무, 백호, 청룡, 주작)을 무덤의 벽면에 그렸다. 내가 화공이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르는데 화공 아저씨에게 물어 보니 벽화는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 수정을 하면 완성이 되는 거라고 하셨다. 벽화를 그리는 것을 보고 나는 늙지 않고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는 신선세계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645년 7월13일>
 당나라군이 왜 조용하나 싶었다. 당나라군은 안시성보다 더 높은 토성을 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고구려 군사들이 쉬지 않고 화살을 쏘아도 계속 토성을 쌓았다. 이렇게 계속 쌓으면 언젠가는 안시성보다 더 높아져서 결국 안시성을 내려다보며 공격할 텐데……. 그렇다면 안시성이 함락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가?

<645년 8월14일>
 아직도 당나라군은 토성을 쌓고 있다. 그렇게 공격을 해도 쌓으니 우리 고구려군만 지치는 것 같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내일 밤에 나와 우치를 포함한 별동대 300명을 이끌고 기습공격을 하기로 하였다. 내가 별동대로 뽑힌 이유는 말을 장군처럼 잘 타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틈틈이 말 타는 연습을 하라고 하셨는데, 그 덕분에 별동대로 뽑혔다.

<645년 8월 15일>
 내가, 내가 양만춘 장군님을 구하다니 믿을 수 없다. 우리 별동대가 토성을 치자 당나라군은 큰 혼란에 빠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토성을 빼앗을 수 있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당군은 중국 대륙을 통일하며 쌓은 전투경험 덕분에 재빨리 전투태세를 갖추어서 반격에 나섰다. 당군의 반격에 우리는 밀리기 시작하였다. 그런 중 장군님께서 타고 계신 말이 적의 화살에 맞아 낙마를 하셨다. 장군님께서 쓰러져 계시는데 10명이 장군님을 죽이려 달려들었다. 나는 재빨리 몸을 날려 장군님을 보호하였다. 결국 우리는 밀려서 성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비록 부상을 입었지만, 덕분에 장군님에게 신임을 얻어 지휘소 책임자겸 장군님의 호위무사가 되었다.

<645년 9월 2일>
 당나라의 토성이 이제는 우리 안시성과 높이가 비슷해졌다. 그래서 장군님께서 대비책으로 우리도 성 위로 흙을 쌓아 올려 성을 높이자 했다. 역시 인력이 많은 당나라군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었다. 그래도 할 수 없다. 힘을 내어 한사람이 열 사람의 몫을 해내는 수밖에 없다. 이제 계절이 바뀌면서 점점 추워지고 식량도 부족해 질 때가 되었으니 제발 그때까지만 버텼으면 좋겠다.

<645년 9월 12일>
 당나라군이 토성을 쌓은 지도 어느덧 60여일이 지났다. 토성은 안시성 높이를 훌쩍 넘어서 안시성을 내다보며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내려다보며 공격을 하여 피해가 훨씬 컸다. 이렇게 계속 된다면 안시성이 함락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엄청난 이변이 일어났다. 바로 토성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당나라군의 60여일의 노력은 헛수고 가 되었다. 나를 비롯한 고구려군들은 신이 나서 토성을 점령하였다. 토성을 점령을 하였으니 당나라군도 곧 퇴각할 것이다.

<645년 9월 15일> 
 역시 내 동생 우치이다. 우치가 내 동생인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그 거대한 당태종을 쓰러뜨렸다. 토성을 빼앗기자 화가 난 당태종은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공격을 하다 우치가 쏜 화살에 눈을 맞고 말았다. 눈에 화살을 맞고도 공격 명령을 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토성을 빼앗지도 못하고 당태종마저 부상을 입자 당나라군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이제 당나라군의 패색이 짙어졌다. 그래도 철수하지 않는 것을 보니 당태종의 안시성을 무너뜨리겠다는 그 집념만은 무너지지 않은 것 같다.

<645년 9월 16일>
 당나라군 진영을 보니 철수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아무래도 우리 안시성과의 전투를 3개월이나 끈 데다 계절이 바뀌면서 추워져 얼어 죽을 판인데다 식량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당나라군이 철수하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사냥도 하고 수박도 친구들과 할 수 있을 것이다.
 
<645년 9월 18일>
 우리가 그 거대한 당나라의 침입을 막아냈다. 당나라군이 철수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무기를 던지고 서로를 부등켜 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여자들은 잔치를 준비하고 남자들은 그동안 전사한 사람 중 공을 세운 사람들을 돌방 흙무덤에 안장시켰다.

<645년 9월 19일>
오늘은 마음껏 잔치를 즐겼다. 양만춘 장군님이 우치와 나의 공을 조정에 알려서 우리 둘은 무관이 쓰는 책을 받고 벼슬도 받았다. 잔치 가 벌어지는 내내 악사들은 완함, 거문고, 뿔나팔, 소, 장고 등을 연주하였다. 나와 우치는 수박대회와 마사희 대회에 출전하였다. 수박은 주로 손기술을 써서 상대방과 겨루는 놀이이다. 나는 수박대회에 나갔다가 아쉽게도 결승에서 지고 말았다. 우치는 마사희 대회에 출전하였다. 마사희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아 과녁을 가장 많이 맞히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우치는 우승을 하여 소를 우승상품으로 받았다.

<645년 9월 22일>
 양만춘 장군님께서 내게 장군님의 따님과 혼인시켜주겠다 하셨다. 그리고 우리집도 귀족의 집처럼 크고 화려한 곳으로 옮겨주셨다. 예전의 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집이었다. 출입문도 여러 개 있었고 뜰에 정원도 있었다. 내가 밤에 집에서 나오자 달과 별들이 나를 축하해 주는지 어느 밤 보다 더욱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