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조인혜 교사 서평



『1984』에 담긴 자유, 존엄, 그리고 언어
조인혜 (능곡고등학교 교사)


이 그래픽 노블의 원작인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로 나뉘어 지배되는 세계를 배경으로, 그중 오세아니아에서 역사와 기록을 조작하는 기록청(진리부)의 당원 윈스턴 스미스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오세아니아는 빅 브라더라는 독재자를 내세운 전체주의 독재 체제로, 당원들과 시민들의 삶은 폐허 속의 빈곤한 모습을 보인다. 최첨단 장비와 기술이 있지만, 이는 전쟁과 개인 감시를 통한 체제 유지를 위해 이용될 뿐이다. 이러한 작품 속 배경은 디스토피아를 연상하게 한다. ‘유토피아’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세계를 의미한다면,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반대로 현존하는 사회보다 더 나쁘다고 느끼게끔 형상화된,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디스토피아 문학으로 불리는 『1984』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1984』 속에 드러나는 디스토피아의 모습들은 현재 우리가 읽으면서도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국가나 거대 권력은 물론이고, 온라인상에서 특정 커뮤니티가 하나의 집단이 되어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용인하지 못하고 제재를 가하는 모습, SNS나 온라인 사이트 이용 내역을 통해 수집된 개인의 수많은 정보가 또다시 그 개인들의 소비와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 등은 우리 현실의 이야기다. 이는 마치 『1984』에 나타난 거대 집단의 개인에 대한감시와 통제라는 은유가 현실의 반영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리게 되는 현실의 모습들은 이러한 현상들이 지속되었을 때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미래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끔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작품 속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졌던 윈스턴의 선택과 행동들을 살펴볼 수 있다.
윈스턴은 체제에 저항하는 인간의 행위로서 ‘일기’를 쓴다.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를 말살하려는 체제의 감시 아래에서 글을 쓰는 행위는 그가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 윈스턴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애초에 뭘말하려고 했는지조차 잊은 기분”이었지만, 꾸준히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과 언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발각되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일기를 쓰는 것은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이다. 그가 일기장에 썼던 “자유란
2 더하기 2가 4라고 말할 자유다. 그것만 보장되면 나머지는 절로 이루어진다.”라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체제에 대한 개인의 저항으로써 일기 쓰기는 개인의 ‘언어’를 지키려는 행위라는 점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새언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 책은 1~3부, 그리고 부록 ‘새언어의 원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윈스턴의 인간성이 체제에 의해 말살되어 죽음에 이르는 3부가 아니라 ‘새 언어의 원리’로 끝나며 ‘언어’에 대한 문제의식을 독자들에게 던져 주고 있다는 점은 꼭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새언어의 원리’를 읽다 보면 우리의 사고와 감정, 행동에 언어가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윈스턴이 몇 번이나 당이 당원에게 했던 가장 끔찍한 일 중 하나라고 언급한 감정의 말살은 언어의 삭제와 축소를 통해 가능했다. 또한 당은 체제가 원하는 생각만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만 남겨 놓음으로써 개인의 이성과 감정은 사라지고 체제에 대한 사상만이 존재하고 표현될 수 있게 만들었다. 더불어 개인 간의 관계와 그들 사이의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시도는 늘 문학과 함께한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청에서 근무했던 줄리아에게 당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설이 작품이 아니라 생산해야 하는 상품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은 존엄한 인간성을 보존하는 삶을 위한 언어와 문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 작품은 작가인 조지 오웰도 이야기했듯이 특정 국가 체제만을 한정하여 비판하려는 소설이 아니다. 이는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성, 자유와 개성을 말살하려는 모든 거대 집단과 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을 잘 담아낸 『1984』가 그래픽 노블로 창작되어, 소설로 읽을 때 소화하기 어려울 문장이나 작가의 의도들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래픽 노블의 그림은 단순히 글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인물의 시선, 표정, 말풍선의 모양, 그림 칸의 크기 등 시각화된 요소들을 통해 재탄생한 새로운 창작물이다. 기존의 원작 소설에 도전하기 어려웠던 이들에게도, 혹은 이미 원작을 깊이 이해한 이들에게도 그래픽 노블 『1984』는 매우 매력 있고 의미 있는 작품이 되리라 생각한다. 진심을 다해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