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 나’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내일로의 아름다운 비행 : 김민희

제3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청소년부 우수상
김민희

 
 
‘지지’에게 편지를 써 본 적이 있다.

대략 초등학교 3학년인 10살 때쯤에 나는 특별한 친구 ‘지지’를 위해 펜을 들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엔 단지 애완동물이겠지만, 우리에겐 가족이었다. 비록 친적이 키운 개인데다가 맡긴 것뿐이겠지만. 처음 그를 봤을 때 무척이나 신이 났었다. 살아있는 작은 생명체는 모두에게 사랑을 받으려는 듯이 짧은 꼬리를 분주하게 흔들었고, 가장 어린 나는 그에게 일 순위는 아니었지만 타인보다 나를 의지한다는 것이 기뻤다. 때때로 쌀쌀맞게 굴어도 절대 ‘가족’을 물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괴롭히기도 많이 했고, 미운 털이 박혔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미워하지는 않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완 다르게 흐르는 그의 시간을 붙잡을 순 없었고, ‘지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땐 가슴이 저렸다. 그리고 그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가 내가 쓴 글을 어쩌면 볼 수도 있을 리라 그렇게 느꼈었다. 마지막으로 쓴 편지에는 언니에게서 들은 ‘즐거운 편지’란 시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었다. 

로버트에겐 핑키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로버트의 잔인할 정도의 행동이 충격으로 내게 다가왔다. 맨손으로 행주치마의 새끼를 받는 일이라든지 아무렇지 않게 이라 롱 아저씨에게 후시를 죽이라고 말할 때 도시의 아이들과는 다른 면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서야 그것이 ‘순수함’이라는 것을 알았고, 앞으로 그가 ‘어른’으로 성장할 동안 겪어야할 힘들 일들에 걱정이 앞섰다. 물론 나도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지금이다. 문득 잠에서 깨어 들여다 본 거울속의 ‘나’는 더 이상 어제의 ‘나’가 아닐 때가 많다. 외양적인 변화도 크게 작용하겠지만, 내면의 변화는 바로 지금을 포함해서 시시각각 일어난다. 그러다 ‘지금 난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는 혼란에 빠지고, 왠지 모를 공허함과에 슬퍼지기도 한다. 이는 마치 길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을 안겨준다. 핑키를 죽여야만 했던 로버트도 그 일로 인해 크게 커다란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현재의 상황이 항상 즐겁고 희망차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또다시 깨달았을 때,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는 걸 직감했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의 심정에 대해 논리적이게 말할 수는 없어도 온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상실’의 허전함에도 한편으론 기뻤을 것이다. 앞으로의 살아갈 날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더불어 아직 젊어지기엔 어려운 책임감이 아버지를 통해 그에게 전해졌겠지만, 또한 아버지처럼 소중한 것들을 지킬 강한 힘과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설렘이 되어 그의 작은 가슴 한 쪽에 자리를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펑키는 식욕이 왕성한 돼지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름을 붙여 주고 또 그 이름으로 불러주며 사랑을 담아 대했기 때문에 로버트만의 핑키가 되어 그 소중함으로 세상의 단 하나뿐인 돼지가 된 것이다. 그처럼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의 가정을 꾸리고 로버트를 세상의 단 하나뿐인 자신의 아들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고난도 이겨냈다. 지금도 서서히 회전하고 있는 지구처럼 로버트는 느리지만 정확하게 아버지의 자취를 따라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오늘의 혼돈 속에서도 내일의 기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계속 잃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하늘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약간은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이다. 그에겐 아버지라는 지침서가 있고,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이 있다. 핑키가 곁에 없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항상 들여다 볼 수 있는 동심, 그 아름다운 ‘순수’를 그의 마음속에서 지켜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 이끌어 줄 것이다. 나 또한 흔히 사춘기라 일컫는 시기를 로버트가 그랬듯이 현명하게 극복해 나갈 것이다. 모든 소중한 기억들과 감정들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현실에 안달하며 조급하게 굴기보다는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게 차분하게 지금을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자기 자신에게 당당한 멋진 새가 되어 수평선을 넘어 푸른 하늘을 마음껏 누비기 위해 껍질이 아무리 단단해도 마지막까지 진실 된 용기로, 아직은 여린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맞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