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땅콩 시장에서 행복 찾기

다르지만 똑같이 소중한 문화,
다른 문화와 어울려 사는 일


오은경|울진 노음초등학교 교사

사람들은 약자를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민족, 인종, 언어, 종교 등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집단이 공존하는 사회를 뜻하는 ‘다문화’가 놀리는 말, 깔보는 말이 되어버린 것도 그런 까닭에서일 거다. 몇 년 전 학교에서는 장애인을 폄하하는 말로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욕보다 더한 말로 ‘애자’를 쉽게 들먹였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성 소수자를 비하하는 말들이 욕 대신 쓰였고 이제 그 자리는 ‘다문화’라는 말로 채워지고 있다. 서로 다른 대상을 폄하하는 말로 쓰였지만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명확해진다.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처음부터 아이들이 민주를 밀어 내지는 않았다. 아이의 엄마들이 먼저 민주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는 이유로 자기의 아이들을 데려가 버렸다. 초등학생이 된 민주는 친구들이 있을 때는 엄마를 모른 척하기까지 한다. 민주와 친구들이 학교에서 다문화 교육을 받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 학교에 간 민주는 엄마를 더 부끄럽게 여기고 심지어 엄마에게 베트남 이름을 바꾸라고 강요하기까지 한다. 무엇이 잘못일까. 해마다 학교에서 다문화 가족에 관한 행사는 더 다양해지고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
화, 다양성의 존중에 대한 교육은 분명히 늘고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학교의 일회적인 다문화 교육은 대부분 학생들이 우리나라문화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내용일 때가 많다. 하지만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거의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다. 엄마나라(다문화 가정에서는 엄마가 다른 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으므로 엄마로 통칭해 쓰자.)의 문화를 듣고 익힐 기회는 거의 없다. 엄마도 우리나라에 와서 얼른 적응하느라 아이에게 엄마가 어떤 나라에서 나고 자랐는지 천천히 들려줄 형편이 아닐 때가 많다. 그러니 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이가 자신이 다문화 가정의 자녀라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 채기 전에는 한국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와 똑같이 자란다.
다시 말해 국적이 한국이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 학교에서는 다시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와 적응 훈련을 하고 있는 거다. 이 책에서 친구들이 민주가 매운 것을 잘 먹고 국어 시험도 잘 보는 것에 놀라는 반응과 다를 게 없다. 민주는 작은 목소리로 ‘나도 너희처럼 한국에서 태어났어.’ 라고 외친다. 그러니 이 ‘특별한 대우’는 ‘엄마’ 때문이다. 엄마만 아니면 이렇게 특별한 취급을 받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교육 기관의 형식적인 다문화 이해 교육과 어른들의 피해 의식이 아이들에게 ‘다문화’라는 말이 다양성이 공존하는 발랄한 사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해도 될 약자를 놀리는 말로 인식하게 만든 건 아닐까.

이 책에서는 민주의 엄마 ‘호티옌’이 살던 베트남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가난에 찌든 삶이 아니라 베트남의 자연과 호티옌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수백 년 넘게 이어 왔을 베트남의 전통문화를 보여 준다. 민주는 엄마가 일일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야 엄마에게도 다르지만 똑같이 소중한 문화가 있음을 알게 된다. 호티옌에게 우리와 다른, 하지만 다르지 않은 베트남 이야기를 들은 민주 친구들도 태도가 바뀐다. 그동안 다수인 우리와 같은 것은 맞고 다른 것은 우리한테 맞춰야 한다는 교육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민주는 엄마 나라 문화를 인정하고 나서 엄마와 또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그것은 아마 앞으로 민주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고 그들은 동료가 될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을 보며 생각 자리를 남들보다 훨씬 더 넓혀 가며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 시작이 땅콩 시장이고, 땅콩 시장을 여는 사람들은 시장 상인들을 설득하고 기다리는 시민 정신을 스스로 키우게 된다. 우리의 민주주의 정신이 어디에서 막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있는지 어쩌면 그 해답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호티옌의 딸 이름이 ‘민주’인 것도 작가의 깊은 의도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