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을 읽고 : 황국태

제1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독서감상문대회
대학일반부 우수상 수상작


 
1948년 내가 열너댓살적에 평양정권 초대내각 부수상은 박아무개와 홍벽초선생님이셨다 함자 끝의 "희"를 姬로 잘못알고 아마도 두분중 한분은 여성인줄 알았다 이곳 남쪽에 내려와서야 소설 "임꺽정"을 , 벽초선생님을 알게 됐다 54년인가 서울 수복후에 월북문인들의 작품을 몰래 숨어서 읽을적에 한권인가,60년대초에 두세권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겁도 났지만 호기심과 재미 스릴도 있었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때마침 해빙난류를 타고 사계절사에서 옹군 제대로된 아홉권이 나와서 내리 두번씩이나 한눈팔새 없이 읽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소설 임꺽정은 민족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며 위대한 유산이다, 작가 벽초는 봉건사회의잔재인 기득권자 지배층으로부터 절대다수의 피지배계급의 해방,개혁과 동시에 외세로부터 민족의민주자주적인 독립을 위하여 투쟁한 사회주의자다 민족주의자다"
 
그렇다면 "소설 임꺽정 " 틀안에 담겨져있는 말과 밑바탕 생각과 줄거리와 얘기는 무엇이며 어떠한것이었나?

백두에서 한나까지 조선 8도 공간을 무대로 해서 위로는 나랏님 양반계급 밑으로 천민 백정에 이르는 허다한 군상들이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웅대한 구도속에 "소설속의진실"이 아닌 마치 역사현실의 진실 처럼 실감나게 형상화한 사건의 전개도 단순 평면이 아닌 입체적 유기적으로 연관시켜서 독자들로 하여금 예측과 기대를 할수있게끔 씌어졌다.

 
한글을 어미젖으로 자란 사람이라면 "임꺽정"을 재미있게 읽는 동안에 저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민족의 고향마을에서 신토불이로 숨쉬는 착각을 이르킬것이다 나는 임꺽정을 읽을적마다 지금은 판문점이라 부르는 내땅이면서도 얼씬할수없는곳, 그때 풍류 남아 단청령이 청석골에서 피리를 불고 노여나서 산보고좋아하고 물보고좋아하며 널문니(板門) 마을을 나귀타고 지나던 발자국을 톺아보고픈 충동을 느끼곤한다.
 
열권책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해서 궤뚫는 생각과 뜻은 가혹한 신분제도의 질곡과 봉건사회의 지배계급의 압제에서 탈출하려는 천민 선각자들의 저항 대결 싸워서 새세상을 만들려는 생의,장한혁명사상이라 할수있다 그들은 이미 좀도둑이 아니고 하고자하면 여러백명의 졸개를 거느릴수있는 제각기 특출한 무술과 뚝심을 가진 십여명의 두령들과 일곱 결의형제의 조직에다 걸출한 천하장사 임대장과 모사 서림이,각고을동리에,서울장안에 그들의 심복들을 박아놓았고 평안, 강원, 황해도 각곳에 제2제3의 소굴을 마련했었다 꺽정이가 어렷을적에 동무들과 훈련원에 놀려갔다가 역적모의에 치의되어서 문초를 받은데,
 
"이눔 네가 역적질을 할생각이면 봉학이의 활과 유복이의 창을 써먹을 생각이 있겠구나?"
"그럴는지두 모르지요"
"누구를 추대할 생각이었더냐?"
"임금을 없이 하려는 사람이 다시 세운단말이요? 임금이 소용된다면 낸들 못 할까요?"

 
아잇적 부터 이렇게 자란 꺽정이가 장말로 적당의 대장이되었다 하루는 관군이 처들어온다는 소식에 도회청에서 대책을 숙의하며 오간 꺽정이와 서림의 대화를 옮겨보자.
 
"앞으루 큰일을 하실텝니까 안하실텝니까 만일 큰일을 하실테면 적은 창피는 참으셔야합니다 "
"생각 잘하는 사람이 생각해 보구려"
"화내시지 말구 끝까지 들어주십시요 앞으루 큰일을 하실랴면 순서가있습니다 먼저 황해도를 차지하시구 그 다음에 평안도를 차지하셔서 근본을 세우신 뒤에 비로서 팔도를 -"

 
또한 그들은 싸워야할 상대에대한 적개심에 불타고있었으며 생사를 함께하는 동료애 의리 우정을 목숨보다 무겁고 귀히 여겼다.
꺽정이 상본 대목에서

"저 어른 상은 어떻소?" 하고 서림이가 꺽정이를 가르키니
"저렇게 극히 귀하구 극히 천한 상은 나는 처음 보우"
하고 상쟁이는 꺽정이의 얼굴을 다시 보고보고 하였다.
"귀하면 귀하구 천하면 천하지 어떻게 귀하구두 천하단 말이요?"
"상이 그렇단말이지 낸들아우?"

 
이는 청석골에 몸담기 전과 그후의 그들의 반전된 인생과 삶을 "극히극히"를 되풀이 강조하면서 함축한 말이다 뿐만아니라 인종이 동궁시절에 영의정감으로 꼽을 만큼 학덕을 겸비한 백정학자 갗바치의 태생도 고리백정이었다.
 
그는 극과극을 한몸에지니고 호풍환우할수있는 재주를 스스로 감추어 아끼고 천문지리도 환히 통달하면서 모든것을 달관하며 빙그레 웃을뿐 자신의 입으로는 양반과 사회모순상에 대한 비난이나 불평 단 한마디도 낸일이 없다 백정학자 그 존재 자체가 잘못된 사회를 바로 잡으려는 역사의 큰흐름의 한 발원지라고 할수있을것이다 그와 자리를 한번만이라도 같이해본 당시의 지배계층인 명망거유 재상 양반들은 거의 예외없이 자기네들이 누리는 자리가 태생에 연유함을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하고 저희들 보다 몇배 훌륭한 갖바치같은 인물이 천대받고 초야에 썩는 현실사회를 개탄해 마지않았다 꺽정이와 그 형제들은 어렷을적부터 출신성분때문에 박해와 멸시를 받아 오면서 양반에대한 증오심이 뼛속에 배어 사무쳤는데다 더더욱 자기네가 존경하는 스승인 갖바치를 하대하고 없수이여기는데에 또다른 분노를 참을수가 없었다 갖바치가 말년에 칠장사에서 생불이라고 고임을 받고 지낼때 유복이가 선생님을 찾아모시고 있는데 서울 양반이 칠장사 생불 선성을 듣고 호기심으로 찾아 왔을때 그들의 하인과 유복이와의 대화를 추려 보자.
 
안진사 하인이 안을 들여다보며
"저 중이 백정 중이올시다 저 속인은 과객(유복이)이고요"
하고 다시
"소인이 들어가서 백정중을 불러내오리까?"
하고 의향을 묻고 마루를 치어다 보며
"양반님네가 문밖에 와 서셨으니 얼른 나와 영접해"
하고 소리를 질렀다 노인 대사는 빙그레웃고 말이 없는데 꿇어 앉았던 속인(유복이)이 일어서서 마루 끝으로 나오며
"누구더러 누구 영접하란 말이요?"
하고 말씨 곱지않게 물었다
"누가 당신더러 나오라우?"
"그러면 누구말이야?"
"저 중더러 말하는데 왜 당신이 중뿔나게 나서서 말성이야?"
"저 중이라니, 말을 배운것이 그뿐인가?"

 
안진사와 서울 양반님네가 데리고 온 하인 여섯사람이 유복이 발길질 주먹부림에 늘비하게 쓸어지고 양반들은 노발대발 중과 유복이를 관에 고해서 양반 본때를 보이려 했는데 대사의 부드러우나 거역할수 없는 힘에 눌려서 대화로 무마해서 덮이었다.
 
"대사가 범상한 인물이 아닌줄은 증왕에 짐작했지만 정암선생과 (조광조)교분이 두터운줄은 몰랐소그려"
 
첫상면에서는 "해라"에서 몇마디 오고가고 곧 "하우"를 거쳐 "하셨소?" 말씨가 양반님네와 동격으로변했다.
 
양반과상놈 지배자와 피지배자 뺏는놈과 뺏기는놈 땀안흘리고 배부른자와 등허리가 굽도록 일해도 배골는자 이런 모순을 지극히 당연한것으로 여기고 숙명적으로 받아드려지는 사회질서 그 도도히 흐르는 장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틀어서 방향을 바꾸려는 엄청난짓이 바로 임꺽정과 그 일당의 혁명적인 장거라 할수있다 작용과반작용 그 급한 탁류의 물살에 부디치는 소용돌이에 바위가 굴러깨지고 하면서 우리의 "임꺽정"이야기가 생겨난 것이다.
 
거기다가 조선의 삼대 천재라는 벽초의 해박한 역사지식과 독창적인 상상력.
품격높은 사실의(寫實) 필치로 다듬어졌으니 우리 근대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일수밖에. 열권 각권마다 영화연극을 만들어도 남을만큼 줄거리, 이야기가 넉넉하고 장면장면마다 재미와 웃음과 기대가 넘친다.
 
봉단편에서 춘향과 봉단,주삼의안해와 춘향모 월매, 도집강과 변학도와 대조가되고 게으름뱅이 김서방이 이급제가 되기까지의 기다림이 이도령의 암행어사 출도못지않게 애를 태운다 춘향전은 도식화한 권선징악의 한문성구를 늘어놓은 글재치라 하면 봉단편은 이끼낀 바위그늘아래 더덕향기 같다.
 
칠장사의 결의 형제 일곱 사내들의 안해얻기 안해 만들기를 살펴보면, 꺽정이와 백두산 야생마 운총이와의 첫사랑,서울장안의 세 계집이 저마다 정실안해로 행세하고, 기생 소흥이와의 찰떡같은 정분에서 영웅호색을, 병방비장 이봉학과 죽은 기생 추월의귀신과 전주부윤과 관기 계향과의 아기자기한 애증이 얼킨 이야기, 박유복의 애비원수갚는 무용담과 장군당 굿거리도 볼만하고 언감생심 영검한 귀신 최장군의 새색시를 뺏아다 안해삼는 이야기. 황천왕둥이의 데릴사위 취재보던 천일야화, 소금섬지고 떠돌아다니다가 빈집 혼자 지키는 처녀와 첫날밤을 치루는 길막봉의 장가들기 들은 우리네 들과산에 피어나는 꽃꽃에 날라들어 너울거리는 나비춤 그림같다 소설 "임꺽정"은 무협소설은 아니다 아쉬운 미완의장인 자모산성과 구월산성편에서는 어떤 장면이였을런지는 몰라도 실제로 임꺽정일당이 벌인 화적질 싸움이란 싱겁게 끝난 평산쌈과 억울하게 갇힌 가족이나 결의형제를 구출해내는 파옥소동뿐이었고 써먹은 병장기라야 칼한자루에 활하나 표창 꼬챙이 몇개 뿐이었고 무지스런 쇠도리깨, 맨주먹질, 다급할때는 생나무를 뿌리채 뽑아들고 휘두르는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수호지나 삼국지 보다 재미있는것은 허황된 과장이나 동떨어진 남의 얘기가 아니고 우리네 민초들이 산과들 초가지붕밑에서 소금끼 찌릿한 땀과 구수퀴퀴한 메주뜸 내음이 배인 "情"으로 얽힌 삶터에서 우리끼리 만들어낸 이야기거리이기 때문이리라.
 
우리네 주인공 임꺽정을 그려보면, 화적패 괴수 다웁게 육척거구에 턱밑엣수염이 좋고 힘이장사요 검술에도 출중하고 비위틀리면 양반 상놈 가리지않고 목버히기를 무 밑둥 자르듯하고 술과 계집을 좋아하고, 그런것만은 아니다.
 
류도사로 분장한 꺽정이가 지방 수령들을 골려주는 대목에서
 
"여보게 우리 서루 허교하세"
"호반친구가 창피하지만 터 줌세"
"나두 호반 명색일세"
"아니 자네가 투필했단말인가?"하던 통쾌한 하이 코메디.

 
군령여산,엄한 군율시행에 당장 효수를 당할 의동생 봉학이를 목숨을걸고 솔개 닭채듯 구해내고 세번의 파옥작전과 대왕당 굿판소동도 꺽정이의 따뜻한 안해 자식 형제를 아끼는 "정"으로였고 곤장까지 맞을줄은 미처 몰랐지만 칭찬듣지는 못할줄 뻔히 알면서도 누구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역적으로 몰려 죽은 양반의 시신을 거두어 주는 인간애.
 
그밖에, 하마트면 살인 날번한 김산과 황천왕둥이 사내들의 우정, 늙은 오가와 소탈한 양반 덕순의 죽은 안해를 못잊어 그리워그리워 눈물짓는 애틋한 사내들의 순애보, 화적괴수질하는 박연중이를 양민되라고 뜨거운 눈물로 설득하던 반상의 지체를 넘어선 우정,하잘것없는 천민과부의 호환에 죽은 아들 원수 갚아 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생떼를 들어주는 고을 관장의 너그러운 인정들은 모두다 옛사람들의 따뜻한 "정"으로 살아온 자취를 짐작할수있다 "소설인꺽정"에는"정" 뿐아니라 우리네 선인들이 누린 "멋"도 그럴듯하다.
 
백정학자 갖바치가 백두산에서 묘향,금강,지리산을 거쳐 바다건너 한라산까지 조선팔도를 혹은 선비들과 혹은 산사의도승 때로는 시골머슴꾼과도 어울리며 길양식 한톨없이 주유천하하던 멋, 청빈을 오히려 자랑삼아 고고한 자세를 흐트리지않던 양반님네, 적굴에 잡혀와서도 화적떼 괴수 임꺽정을 통통히 꾸짓는 댓쪽같은 선비의 기개, 지체 높은 종친 당대의 음율가인 단청령이 피리와 지음하는 기생초향의 가얏고와 어울림은 멋중에 멋이다.
 
"상공은 금지옥엽 내몸은 하향천기이나 정에는 우아래층이 없을듯 하외다"
"그대의 높은재주 귀에저져 들었기로 그대를 보랴하고 천리먼길 예왔노라. 그대가 싫다 안하면 같이 놀다가리라"
초향이를 치죄하던 관장 영변부사의 부러운 탄성 "풍류남아의 일이로다!"

 
소설"임꺽정"에 실린 이런 "정"과 "멋"에 얽힌 이야기들은 휴매니티,낭만주의,리얼리즘 따위로는 설명될수없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이속에는 우리말의 보고라할만큼 나랏님 사시는 궁궐에서부터 지체높은 선비양반님네의 교유담론 여염집 살림살이에 쓰이던 말까지 꽉들어차있다 낱말하나만 따로 띄어놓고 보면 무슨말인지 도무지 알수없는 말들이 한줄에도 여럿이 겹치지만 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앞뒤문맥을 짚어서 저절로 재미붙여질것이다.
 
마지막책장을 덮으면서 누구나 다 대미를 마무리 짓지 못한것을 아쉬워 한탄할것이나 읽는중에 암시로 예측되는 요승 보우의 최후, 서림의 모반,꺽정이아들 백손이 활약상,글을 몰라서 병서를 귀동냥으로 깨쳤다는 꺽정이의 다음 접전에서 어떤진법으로 관군을 물리쳤을까, 그리고 아직 아무도 해석하지못한 갖바치의 유언이 궁금하다 글중에
 
"아침먹고, 새참겻들이고.늦은저녁먹고,보리밥 한솥지을만큼 지나서"
 
먹거리 얘기가 지나치리만치 많다 사람의 수효와 입에 관련되는 人口,食口,糊口란 말의 형성과정과 무관치 않으리라 또 백두산밑 운총이는 억센 함경도 사투리,이봉학이가 제주현령으로 부임했을때는 그곳 사투리를,배돌석이는 경상도말씨가 나왔을법한데 .
 
또 불과 반세기 남짓 지난 작품을 사전을 찾아가며 읽어야할만치 우리네 말들이 묻혀가고있다 우리가 부지런히 공부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