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다움이란 : 이금영

2011 1318 독후활동대회 글쓰기 부문 장려상
서울연희중학교 2학년 이금영

 
 
“예뻐.” 인기리에 방영하는 개그콘서트의 대사이다. 동화를 개그적으로 각색하는 데 모든 등장인물 끝에는 이 말이 들어간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있는 외모 지상주의를 꼬집고 있다. 나도 은연중에 그렇게 다른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모가 아닌 다른 것이 진정한 나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깨닫게 되었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나다움일 수 있을까?
 
먼저 배움에 대한 열정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하랴!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하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랴!’ 는 공자의 말이다. 논어(論語) 제1편 ‘학이(學而)’에 가장 먼저 나오는 구절로, 이를 직역하면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로 풀이된다. 학문을 익히고 성인의 말씀을 배우고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데 게을리 하지 말고, 깨우친 다음의 기쁨을 얻으라는 의미다. 이 문장이 논어의 첫 머리에 쓰인 것처럼 공자의 가르침은 ‘배움(學)’에서 시작된다.
 
“박홍배 씨(71)와 강문선 씨(79)는 칠순이 넘는 나이에 늘 꿈을 꾸고 배움에 끝없이 도전하는 이 분들에게서 존경심과 함께 ‘배움의 길엔 끝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껴본다. 물론 해마다 2월 졸업시즌이 되면 언론을 통해 인생의 황혼기에 만학의 꿈을 일구고 있는 60~7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미담(美談)들이 종종 소개돼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기도 한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아닌가 싶다.(2011년 10월 9일 제주일보)”는 김승종 편집부국장대우 말에도 깊이 있는 울림이 있다.
 
공자는 호학만큼은 남에게 양보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니 배움을 향한 그의 열정, 또는 ‘배움=기쁨’이라는 등식에 대한 지극한 긍정을 우리 역시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열 가구의 작은 마을에도 나보다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사람이야 있을 터이지만, 하나 나만큼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거야.’(5:27) 이 말은 ‘나는 남보다 열심히 공부한다’는 따위의 자기 과시가 아니라 ‘즐겁고 재미난 일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욕심꾸러기가 나’라는 겸손한 자기 고백이다. 그는 또 그가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인을 두고 ‘인을 차지하는 데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겠다.’(15:35)라며 욕심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4:8)라고 부르짖었던 말은 단순히 진리 추구의 치열한 욕망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추구하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드러낸 것으로 읽혀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날 학문은 이러한 공자의 사상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오늘날학문이 단지 직업을 갖고 또 그 직업을 이용해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이용되는 듯하다. 공자는 학문이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갈고 닦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학문을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공자의 사상이 지금 우리 현대 사회에서도 조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며,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느니라.’(6:18) 이라 하며 무식함보다는 아는 것이, 또 아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이, 그리고 좋아하는 것보다는 즐기는 것이 낫다는 단계론에서 우리는 배움의 성취가 단지 ‘알고/모르고’ 사이의 이분법이 아니라 좀 더 깊은 차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공부를 할 때 모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알게 되면 알게 되어서 기쁘고, 또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면 계속해서 찾아보고 하게된다. 이 일을 계속하다 보니 공부를 하는 것이 즐거워지고 즐겁게 공부를 하다보면 힘들지 않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나아가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공자는 또 자신의 학교를 지어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였다. ‘발전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손을 잡아주고, 뒤로 퇴보하는 이는 꾸짖어 주어야 하는 법. 그런데 어찌 이다지도 사람 차별이 심하신가! 과거에 잘못이 있는 사람도 제 잘못을 뉘우치고 나아가려 한다면 그 뉘우친 것을 기꺼워 하고, 과거의 잘못은 눈감아 주는 법이거늘!’이라 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려 하였다. 한 신문기사를 보면,
<제주시는 관내에서 운영 중인 ‘동려평생학교’(교장 강준배), ‘장애인야간학교’(교장 오옥만), 제주영락종합사회복지관 ‘영락학당’(관장 이상인) 등 세 곳 성인 문해 교육(읽고 쓰는 능력이 전혀 없거나, 문장 이해 능력이 거의 없는 19세 이상의 저학력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기관에서 54%의 60대 이상 연령층과 50대를 포함해서 80%이상의 연령층 총164명에게 학력 수준에 따라 초등 3단계와 중학과정에 맞춰서 학력보완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17일 밝혔다. 장애인야간학교인 경우 학령기를 놓친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검정고시를 위한 성인 문해반을 운영, 올해 3명의 검정고시 합격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동려평생학교도 올해 검정고시에 44명이 합격하는 등 성인 문해 교육은 한글과 배움에 대한 열의를 가진 수강생들에게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또 어르신 들 뿐 만 아니라 장애가 있으신 분들도 학습에 대한 열의를 보이시면서 배우고 계신 것이다. 아무리 연세가 있으시고 장애가 있으시지만 배움에 길은 항상 누구에게나 의지만 있다면 열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학습이 학령기만이 아닌 전 생애에 걸친 평생학습으로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의 학교는 모든 학생을 다 받아주지만 이만큼 엄격하기도 했다고 한다. ‘첫째, 나는 학생이 모르는 것이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으면 깨우쳐 주지 않는다. 둘째, 학생이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틔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한 모퉁이를 들어 보여주었는데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이에겐 두 번 다시 반복 하지 않는다.’(7:8) 이를 보면 공자는 배우려는 사람에게 다 공부 할 수 있게 하지만 옳게 배우려 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매우 엄격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생이 공부하고자 할 때 의욕이 없고 하나를 알면 둘을 알고 열을 아는 학생이 아닌 하나를 알려주면 그 하나에 만족하는 학생에게는 엄격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선생님이 아닌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하기 전 까지는 내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해주시지 않는다. 내가 직접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고 설명해 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보고 답을 얻는다면 그만큼 나는 생각하는 능력도 길러지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결코 얻어질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이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기쁘지 아니하랴!’라고 하였다. 여기서 벗이란 배움과 익힘을 함께 하는 사람이다. 나와 가치관이 같은 벗이 저 먼 곳에서 나를 찾아 와 주니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크냐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한 재즈 음악가를 예로 들고 있다. 우연히 재즈를 듣고 그 음악에 푹 빠져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겨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빛이 겨우 드는 반지하에 살고 또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지내지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작은 재즈카페에서 노래를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해 가는 사람인데, 어느 날 그 가게에 왔던 손님이 그 노래를 듣고 감동받아 CD를 제작해 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래서 CD를 냈는데 미국에서 유명한 재즈 음악가가 그 음악을 듣고 이 사람을 찾기 위해 먼 곳까지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먼 곳에서 찾아온 벗이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나와 가치관이 같고 공통점이 많고 내면에 있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벗이다. ‘백아절현’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다. 백아가 자신의 음악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어버린다는 내용의 사자성어이다. 이렇게 벗이란 서로를 이해하고 며칠을 얘기해도 질리지가 않고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증자는 “군자는 글로써 벗을 만들고, 벗을 통해 인을 보충한다.”(12:24)라고 했다. 벗이 주먹과 의리가 아닌 학문과 기술로써 사귀는 것을 말한다. 가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보면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 사람들은 책과 친구한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고 책을 가까이 하다 보니 지식이 쌓이고 아는 것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잘난 사람에게는 그렇게 되기를 배우고, 못난 사람에게는 ‘저래선 안 되겠다’는 것을 배운다.‘ (7:21) 예를 들어 세 명의 친한 친구가 있었다. A는 공부를 잘하고 봉사정신이 강해서 주위사람들에게 항상 칭찬을 받는 아이였다. B는 공부는 잘하지만 이기적이어서 주위사람들을 언짢게 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이렇게 두 친구가 있을 때에 C라는 친구는 A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본받고 B의 이기적인 마음은 본받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도움이 되는 벗이 세 종류요, 손해를 끼치는 벗도 세 종류가 있다. 정직한 벗이 도움이 되는 첫 번째요, 약속을 꼭 지키는 벗이 두 번째요, 견문이 넓은 벗이 세 번째다. 손해를 끼치는 벗으로는 꽉 막혀 세상 넓은 줄 모르는 녀석이 첫 번째요, 알랑방귀 뀌는 녀석이 두 번째요, 간사한 녀석이 세 번째다.’(16:4) 꼭 친구를 사귈 때가 아니더라도 사회에서도 정직하고 약속을 잘 지키고 견문이 넓은 사람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만 알랑방귀 뀌고 간사한 사람은 나에게 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된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이 담배와 같이 백해무익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충고를 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되,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어야 한다. 스스로 욕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12:23)라고 공자는 말했다. 친구에게 충고를 하더라도 이 친구가 말이 통하지 않는 친구라면 그만 두는 것이 나에게도 좋고 그 친구의 기분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자의 사상을 한 마디로 말하면 ‘인(仁)’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인’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실현해 내는 인간상이 ‘군자’요, 또 인의 구체적 실현이‘효행(孝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효도는 인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님도 잘못을 하실 수가 있다. 그럴 때에도 자식은 그 잘못에 대해 에둘러 지적할 일이다. 부모님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또 공경하여 그 뜻을 어기지 말 것이며, 끝내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된다.’(4:18)라고 공자는 말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하늘이 맺어준 자연적 관계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가 어떠한 잘못을 했을 때 자식이 눈감아 주는 것보다 그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충고를 부모님께서 무시하신다고 해서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어야 효도라 할 수 있다. ‘내 이름은 호프’에서도 엄마의 언어폭력에 시달리던 주인공 호프가 페니라는 점수노트를 통해 엄마의 언어폭력이 주는 상처를 깨닫고 말로 표현한다. “엄마가 ‘멍청이’라고 말하면 가슴이 아파요.” 처음에 엄마는 호프의 말에 담긴 상처를 깨닫지 못하지만 호프의 마음의 울림이 주위로 퍼져나가 엄마에게 깨달음을 준다.
 
나는 진정한 나다움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좋은 친구 관계를 형성하며 친구가 잘못했을 때에는 충고해주되 그 친구가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이 진정한 나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의 말씀 하나 하나가 커다란 울림을 준다. 그리고 공자의 어록인 논어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읽혀온 것은 어쩌면 읽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저마다의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논어가 나에게 화두로 던져 준 진정한 나다움은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 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과 인을 바탕으로 한 부모님과의 관계가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