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 서평 - 잃을 것 없어 떠난 길에서 얻은 것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 서평 - 잃을 것 없어 떠난 길에서 얻은 것
박사|북칼럼니스트

스물아홉 살이라는 나이, 목적도 없이 2년 동안 낯선 나라에서 산다는 것.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2년 동안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저자는 친구의 말을 듣고 용기를 얻는다. “뭐 어떠냐. 우리가 지금 교수직을 뿌리치고 가는 것도 아니고. 잃을 것도 없어.” 그 후 작가는 프랑스의 작은 소도시에 자리를 잡고 ‘아무튼…’으로 시작하는 에피소드들을 보고 듣는다. 그리고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를 그린다.

살아 보지 않고는 모르는 이야기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봐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낭만적인 선진국’ 프랑스는 없다. 가까운 전쟁의 기억으로 나달나달한 지금의 프랑스를 채우고 있는 것은 상처받은 이들이다. 난민, 하르키, 노숙자…. 저자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을 깊이 들여다본다. 낯설기 때문에, 혹은 닮았기 때문에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저자는 판단과 단죄를 유보한다. 프랑스어 교습소에서 알게 된 아르메니아인 청년 L은 프랑스로 망명을 신청한 상태이지만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망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오랜만에 만난 L은 프랑스 여자와 결혼한 상태였다. 저자는 그 결혼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북아프리카에서 온 F도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신문에 구혼 광고를 내고 남자를 만나지만 저자는 F의 선택에도 토를 달지 않는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만화책 작업을 거의 끝내고 남자 친구도 생긴 저자는 프랑스에 좀 더 머물 방법을 찾는다. 프랑스 출판사와 계약도 했지만 신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불안함과 불편함을 견디기 힘들었던 저자는 결국 남자 친구와 시민연대계약(PACS)을 맺는다.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결혼을 수단으로 삼는 이들과 자신은 얼마나 다를까? 그 고민 덕분에 저자는 남의 사정을 쉽게 재단하지 않는 균형 감각을 얻었다.

동네에서 만난 이들도 다양한 얼굴을 보여 준다. 작은 소도시에서의 삶은 단조로울 것 같지만, 살짝 겉을 들추면 그 안의 인생은 하나하나 다르다. 알제리 독립군에 대항하는 프랑스군에서 복무한 알제리인 ‘하르키’ 할아버지, 은퇴한 피아니스트, 구걸하는 부부, 집에 돈 봉투가 있으니 나중에 갚겠다는 뻔한 거짓말을 하며 손을 내미는 전직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 ‘자동차 함께 타기’ 사이트에서 만난 운전자들, 병원이나 만화 페스티벌에서 만난 사람들. 저자는 그들을 섣불리 평가하지 않지만, 그들을 보며 조심스럽게 자신이 사는 모습을 돌아본다. 프랑스와 인근 국가에서 연이어 일어난 테러와, 한국에서 일어난 촛불 집회는 좀 더 큰 규모에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저자는 가까운 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를 보며 다른 테러의 역사를 찾아보다가, 말 그대로 ‘질려서’ 나가떨어졌다. 세상이 곧 망할 것이라는 실감과, 세상은 늘 이 꼴이었으니 당장 끝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상반된 감정이 함께 일어난다. 거리를 두고 보니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낯설어진다. 독자들은 덩달아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선 것들을 가까이 끌어당겨 본다.

여러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프랑스에 사는 사람들의 생생한 숨소리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저자의 담담한 시선이다. 감정의 동요를 감추지 않지만 과장이나 너스레도 없다. 불편한 것은 불편하다 말하지만 지레 이것저것 끌어다 붙이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뿐이다.

‘이곳에서 산다’는 것은 ‘이것밖에 못 본다’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저자가 담백하게 펼쳐 보이는 사람살이의 풍경은 ‘저곳으로’ 떠남으로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낯선 풍경들 앞에서 내 삶과 다른 부분들을 생각해 보는 동시에 무분별한 비교를 경계하는, ‘쉽지 않은 균형’이 이 책의 미덕이다. 잃을 것이 없어서 떠난 길에서 얻은 이 풍경들이 값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