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여름방학> 강현선 작가

 



『여름방학』

강현선 작가 미니 인터뷰

Q. 여름이 끝나갈 무렵, 그림책이 출간되었어요. 오랫동안 품고 있던 더미를 그림책으로 완성한 것으로 아는데요. 출간된 그림책을 받았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A. 이 이야기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계기로 만들어졌어요. 아프라카에서 첫 월드컵이 열리고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나 사진들이 많았거든요. 자료를 보다가 흰옷을 입은 아프리카 소년이 모래 위에서 축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걸 보고 첫 드로잉이 나왔고 이야기가 완성되었어요. 그때 채색까지 마쳐 더미를 완성했지만 출간까지 이르진 못했어요. 그동안 이 더미는 저의 아픈 손가락이었는데 이제야 이 아이(작품)에게 엄마 노릇하는 느낌이네요.
 


 





Q. 『여름방학』은 빨간 버스가 출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해요. 아주 조용히, 장면이 흘러가지만 장면마다 집중해서 들여다보면 여름의 소리가 들리는 듯해요. 글 없는 그림책으로 작업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A. 처음부터 글 없는 그림책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었어요. 길진 않지만 대사도 좀 있었고요. 무엇보다 용기가 나질 않았어요. 그러다 편집자님이 글 없는 그림책을 제안해 주셨고(보통은 반대의 상황이 많다고 들었는데) 용기 없는 제게 용기를 심어 주셨지요. 글 없는 그림책의 매력은 독자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더 풍부하고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글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친절하게 전달되지만 글이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제한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거진 숲에서 나는 풀벌레 소리, 물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웅성거림, 모래사장에서 펼쳐지는 축구 장면에서 아이들이 뛰는 숨소리…. 글 없는 그림책이라서 더욱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인물의 관계도 독자들이 상상하며 따라가야 더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Q. 그림책에서 아이들의 동작은 섬세하게 표현되지만 표정은 모두 그리지 않으셨어요. 빈 얼굴이 어떤 이에게는 인물의 감정을 상상할 여지를 주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낯설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물을 표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있다면?



 

 

A. 이번 작업에선 인물의 표정보다는 제스처에 더 집중해 보았어요. 언어와 문화에 따라 제스처의 의미는 다르지만 소통할 수 있는 제스처는 비슷하니까요. 친구들과 동떨어진 아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모습, 나머지 친구들은 그 아이를 향해 팔짱을 끼거나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으로 표현했어요. 얼굴의 표정을 그리지 않은 건 심리적·심미적 이유가 있는데요. 버스에서 축구공을 안고 있는 아이는 원래 여행에 오고 싶지 않은 아이였어요. 자기가 원치 않았던 여행이 즐겁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아이를 다른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거고요. 무표정처럼 보이는 빈 얼굴이 아이들의 심리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심미적 이유로는 이 책의 마지막에 아이들이 노을 속에서 실루엣으로 남았다가 사라진다는 점에 있어요. 


하나의 실루엣만 남고 아이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죠. 그래서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만한 요소. 특이한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이 드러나지 않게 했어요. 10년 전, 이 작품을 다른 분들에게 보여 줬을 때 인물의 이목구비를 그려 보라고 해서 그렸었거든요. 얼굴이 생기면 아이들이 대머리로 보이더라고요. 그럼 머리카락을 그려야 하는데 그건 제가 표현하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여서 이목구비를 그려 보란 유혹을 물리치고 얼굴을 그리지 않기로 결심했죠.

 

 

Q.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움직임을 역동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하셨는데요. 공을 향해 달리는 아이들의 축구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몸짓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A. 축구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즘은 손흥민 선수를 좋아해요. 이번 그림책에서 축구를 춤처럼 표현하고 싶었어요. 예전에 달밤 옥상에서 격투를 하는 장면을 영화에서 보았는데요.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을 춤추는 것처럼 표현한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언젠가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해 보았어요.

 




 

Q. 스탬프 아트와 콜라주 기법을 즐겨 쓰시는데요. 이번 그림책 작업할 때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뽑고 작업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A. 한 장면을 뽑긴 힘들지만 축구가 시작되면서 발이 클로즈업 되는 장면이요. 분위기를 확 전환하면서 구도를 과감하게 바꾸었어요. 아이들이 축구하는 발에 초점을 맞추고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이 한 장면 안에 보이면서 축구가 시작되는 장면이에요. 몸을 가깝게 보여 주는 방식이 속도감과 긴장감을 드러내 준다고 생각해요. 『여름방학』은 스탬프도 사용했지만 콜라주 기법도 많이 썼어요. 콜라주 기법을 인물 표현에 주로 사용했어요. 얇은 습자지에 물감을 입히고 오리고 붙이는 작업이에요. 습자지가 워낙 얇고 결이 있는 종이다 보니 오리느라 고생한 기억이 나네요. 칼로 오렸는데 칼날을 계속 자르며 작업했어요.




 


 



Q. 아이들이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장소는 어떤 곳일까요?

 

 


A. 구체적인 장소 설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배경을 스탬프로 표현하여 현실에 있는 장소라기보다 또 다른 세상의 모습을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모래 위에서 맨발로 축구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공간을 묘사할 때는 강원도를 떠올리긴 했어요. 산과 계곡, 모래사장이 모두 있는 곳이니까요.

 




 

Q. 『여름방학』은 글이 없는 그림책이라서 누군가 읽어 주는 책보다 혼자 조용히 그림을 감상하고 따라가며 읽는 책일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법을 알려 준다면?


 

 

A. 인물 간의 관계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여름방학에 놀러 온 아이들, 그곳에서 지켜보는 다른 아이들. 자세히 들여다보면 축구공을 계속 갖고 다니는 아이가 있거든요. 아이들끼리 어떤 관계인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밌고요. 그리고 공을 따라가며 읽는 것도 권해 드려요. 노을이 붉게 물들며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공을 붉은색으로 그렸어요. 붉은 축구공을 따라가면 어느 순간 공도 사라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