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사계절문학상 심사 결과 발표

제17회 사계절문학상 심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올해 사계절문학상은 수상작을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아래에 고민을 거듭하신 심사위원님들의 심사평을 밝힙니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과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9년 12월 31일 마감되는 제18회 사계절문학상 응모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17회 사계절문학상 심사평]
이번 제17회 사계절문학상은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긴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응모된 작품들에서 작가들이 쏟아부은 열정과 숙고의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졌기에 동행할 방법을 찾아보고자 했으나 그것이 꼭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17년의 역사를 가진 청소년문학상에는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시점보다 한발 더 나아간 서사를 제안하는 일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저마다 고려할 만한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수상작으로 택하기에는 끝내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작품의 미래를 위해서는 문학적으로 충분히 완성된 모습을 갖추어 독자를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뼈아픈 일이지만 청소년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잠시 공백을 마련하고 더욱 치열한 고민의 기회를 가지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응모된 작품 중에서 일곱 편을 본심에 올리고 면밀하게 검토하였다. 작품 속 갈등의 원인이 밝혀지는 과정이 설명으로 대체되거나 청소년 인물을 묘사할 때 성역할 고정관념을 답습하는 작품들이 먼저 걸러졌다. 또한 청소년기의 과제를 오직 극복으로 설정하고 젊음에 대한 회고조의 찬양을 선사하는 것은 청소년문학의 주체를 되묻게 만드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기를 상실감이 누적되는 절망의 시간으로만 바라보는 바람에 이야기의 에너지를 발견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있어서 아쉬웠다. 수렁에서 수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에 사건의 개연성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인물의 불안과 우울에 기대어 이유를 해명하려는 경우가 종종 보였다.

SF와 판타지의 경우 무리한 장치를 내세워 이야기를 봉합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좀 더 차분하게 나열된 서사의 핵심을 정리해 보기 바란다. 난감할 정도로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상투적 표현을 그대로 쓴 작품들도 마음에 걸렸다. 작가는 독자에게 작품을 전하기 전에 자신의 문장을 돌아볼 책무를 가지고 있다. 교정과 교열도 일차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안정된 문장이 주는 신뢰감은 읽는 사람이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든다.
고령화 시대, 조손 가정의 증가를 반영한 것인지 조부, 조모가 많이 등장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청소년의 눈에 비친 노인의 삶, 생명의 존엄성과 죽음에 대해서 다룬 작품이 유난히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 중년이 노년에게 느끼는 일상적 동병상련에 청소년 인물의 목소리만 겉에 입혀 놓은 듯 그려져 아쉬웠다. 더불어 ‘죽음의 인플레’라고 여겨질 정도로 인물의 반성이나 성장의 계기로 죽음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었다. 경박함을 벗어나 그 세대의 시선과 감각으로 존재와 세계에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찾고 있다.
 
SF 응모작 가운데에는 「미엔」 외 일곱 편이 담긴 단편집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수록작 중 「위기의 인간」, 「언더워터 카우보이」, 「미엔」 등은 구성과 전개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미래에 다가올 변화를 호기심으로만 다루지 않고 처절한 생존의 문제로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에 신뢰가 갔다. 문장도 안정적인 편이었다. 다만 수작과 범작 사이에 아직 격차가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몇몇 작품은 평면적이고 설정 중심이어서 문학적 형상화와 서사의 논리적 보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내게는 홍시뿐이야』는 생계와 생존의 벽에 부딪힌 청소년이 자립하는 과정을 그렸다. 학교 밖으로 나온 청소년의 삶을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선명한 경제적 주체로 그려 낸 부분에서 그동안 나왔던 작품들과 차별성이 보였다. 구성도 탄탄하고 이야기의 밀도가 높았으며 공간의 이미지를 세밀하게 구축해 내는 작가의 힘에도 신뢰가 갔다. 그러나 엄마와 주인공의 연결고리가 되는 ‘홍시’에 지나치게 많은 상징성을 부여한 것은 무리했다고 본다. 대안 가족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행보도 어느 부분부터 설득의 지점을 놓쳐 버렸다. 작품 속 엄마들이 불행의 원인을 겨눌 만만한 공격처로 쓰인 것도 아쉽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매력적이고 그 밖에도 장점이 많은 작품이지만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정리해서 정확한 서사의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

새로운 수상작을 기다리는 순간은 응모자만큼이나 독자와 심사위원들에게도 설레는 일이다. 그 기쁨을 나누지 못하게 되어서 무척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부족하지만 소견을 전한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쓰는 분들의 노력을 정중히 모시는 곳이 되어야 좋은 이야기가 생겨날 것이라고 믿는다. 내년을 기약하면서 여러분의 건필을 기원한다.
 
오정희, 이금이, 홍명진, 김지은(제17회 사계절문학상 심사 위원)
김지은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