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양춘단 대학 탐방기』 - 사각지대를 비추는 사회의 거울

김영일, 양호익, 양춘단,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작가 박지리는 이 이름들을 연필로 꼭꼭 눌러쓴 듯하다. 그리고 강조했다. 이름 없이 김씨, 이씨로 살아간 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이다. 양춘단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단 한 번도 주인공의 자리에 서 본적이 없었을 법한 인물이다.

아니, 주인공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아마 그 누구도 그녀로 하여금 “화자”의 입장에 둔 적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장삼이사들에게는 이름이 없는 게 아니라 입이 없다. 입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언어가 되지 못하고 그래서 말을 하되 화자가 되지 못한다.

현대 소설의 역사는 이, 입 없는 자들에게 발언권을 허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하녀 파멜라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 사실 그것이야말로 소설의 힘이기도 하다. 영웅과 호걸들의 이야기가 고전 소설이라면 무릇 현대 소설은 작은 사람들, 소시민들의 이야기여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양춘단은 우리 사회의 응달에 놓인 소시민임에 분명하다. 우선, 그녀가 삶의 터전을 잃고 밀려나온 노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만일, 양춘단이 고향에 살 수 있었더라면, 어쩌면 그녀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의 병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치료의 편리가 그녀를 도시로 이끈다.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고, 큰 욕심도 그렇다고 부족함도 없이 살아가던 춘단 부부는 갑작스럽게 도시의 주변인이 된다. 당장 발붙이고 살아갈 땅을 잃게 되자, 먹고 살 길이 막연해진 부부는 그들에게 가능한 일, 노동할 거리를 찾게 된다.

그때 춘단의 눈과 귀를 밝힌 게 바로 “대학”이라는 두 글자이다. 지금이야, 흔한 게 대학생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춘단에게 “대학”은 멀고 먼 상아탑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늦둥이 동생을 업은 채 먼 훗날을 기약했던 춘단에게 공부는 놓쳐 버린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춘단에게 공부는 늘 차선으로 밀리기만 했던 아쉬움이기도 하다. 여자 아이 공부쯤이야, 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시절의 흔적일 테다. 적어도 춘단이 살았던 시절엔 여자에게 대학이란 꽤나 사치스러운 액세서리였으니 말이다.

대학에서 일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춘단에게는 큰 영광이 된다. 대학, 그곳은 높은 지식을 가진 교수들과 배움의 열정이 가득한 청년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적어도, 춘단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춘단이 대학에서 목격하게 되는 풍경은 멀리서 보았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강사나 교수로 나뉜 체계도 그렇고 도통 예의를 모르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춘단은 “대학”이라는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카메라 눈 역할을 한다. 60년대식 사고방식을 가진 춘단이 보는 “대학”은 이미 대학으로서의 존엄성이나 위엄을 상실했다. 순수하면서도 고리타분한 춘단의 눈을 통해 우리는 관습적으로 “대학”이라 부르는 공간이 정상궤도로부터 얼마나 멀찌감치 떨어져 나왔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춘단이 경험하는 대학은 모순과 역설이 가득 찬 공간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비단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춘단이 경험한 대학은 곧 서울, 대한민국, 우리 사회의 단면이자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대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한 셈이다.

시끄럽고 뜨거운 컨테이너 박스에서 훔친 듯 식사를 해결하는 대학의 청소노동자들. 사실 우리는 그들을 늘 보아왔지만 한 번도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동안 대자보와 뉴스를 통해 삶의 형편이 알려졌을 때에야 겨우 우리는 그 사각지대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박지리의 『양춘단 대학탐방기』는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비춰주는 반사경이라고 할 수 있다. 박지리는 이 입 없는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그들을 화자의 자리에 모신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 왔고 또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 말하게 함으로써, 춘단들을 서사적 존재로 전경화한다. 이 전경화를 통해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무뎌진 감각은 다시 살아난다. 마치, 소설이란 그렇게 무뎌진 감각을 건드리는 요철이라는 듯이, 작가 박지리는 그렇게 소설의 언어로 세상의 벽을 두드리고 있다.


| 강유정 (문학평론가)

 
 
양춘단 대학 탐방기

저자 박지리

출판 사계절

발매 201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