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준에게 : 이현근

제2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일반부 우수상
이현근
 

 
요즈음 계속되는 폭염이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 같다.
더운 날씨 가운데에서도 방학 수제를 하느라 박물관이다, 전시회를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공부하는 것도 노력 없이는 결과를 거둘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발품을 팔아가면서 전시회도 다니고, 박물관도 다녀 보아야 기억을 잘 하게 되므로 선생님이 숙제를 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원이다 과외다 해서 학기 중에는 해 보지 못한 취미 생활도 해 보고, 평소에 다녀 보지 못했던 곳을 여행하는 것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회이기도 하다.

중학교 2학년이 된 네가 가끔 과학에 관한 숙제나 문제를 불어 볼 때면 잊고 있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살려 네가 던진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솔직히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방학 기간 동안 너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선택해서 먼저 읽어 보았는데 여전히 쉽지 않다. 내가 읽어도 쉽지 않은 것을 네가 읽어서 이해가 될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아버지가 읽은 윤소영 선생님이 쓴 ‘종의 기원,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의 첫 부분에서 찰스 다윈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1831년 비글호를 타고 5년간 세계 탐험 여행을 하게 되면서 시작한다고 쓰고 있다.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집안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동식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우연히 동료의 제의로 탐험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남미 대륙 파타고니아에서 발견한 아구티는 유럽의 토끼와 비슷하지만, 발가락 수가 다르고 몸집의 크기도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윈이 가지고 있는 평소의 탐구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남들은 그냥 넘길 수도 있는 것을 그는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훗날 과학 역사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또한 그는 배를 타면서 영국의 지질학 라이엘이 쓴 ‘지질학 원리’를 가져가는데, 항해 중에 이 책을 통해 지질학의 원리를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은 그 당시 주류를 이루었던 ‘천변지이설(天變地異說 : 지구의 몇 차례 지각 변동에 따라 생물이 죽거나 살아남아 현재의 생물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이론)의 반대 이론으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연 활동은 변함이 없으나 오랜 시간의 미세한 변화가 쌓여서 큰 변화를 이루었다는 이론으로 찰스 다윈의 ’변이‘라는 개념의 기초가 된다.

또한 맬더스가 쓴 ‘인구론’(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인구와 식량 간의 차이로 인해 기근과 빈곤이 발생한다는 이론)을 읽고 ‘적자생존’ 또는 ‘자연선택’의 개념을 도출하게 된다. 이 같은 개념을 바탕으로 다윈은 많은 관찰과 사유를 통해 1859년 11월 런던의 존 머리사(John Murray社)를 통해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발간하게 된다.

이 책은 당시 가톨릭 사상이 지배하던 시절이어서 창조론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이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진화를 과학적 사실로 인정하고 있지만,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성경의 첫 장에서 시작되는 천지창조의 기본이 흔들리는 이론이라 심정적으로 수용하기가 어려운 것이 틀림이 없다. 그래서 지질학이나 고고학 연구의 결과인 화석을 통해 소위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강조하고 있어 아버지와 같은 비전문가들은 굉장히 혼란스럽기도 하다.

가끔 이모부와 아버지가 성경에 관한 토의를 할 때 보았듯이 신앙적인 관점과 과학적인 관점이 충돌할 때가 있다. 매번 결론 없이 끝나는 것처럼 진화냐, 창조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창조론자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의 역사가 6천년 정도이고, 현재 과학이 추정하는 지구의 나이는 46억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윈이 비글호를 타던 시점에서 보더라도 채 200년이 안 된 관찰과 연구로, 지구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천지창조를 믿는 기독교인의 입장으로 진화를 받아들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닌가 싶다. 일례로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1642년 사망했을 때 공식적으로 장례를 지내는 것도, 묘비를 세우는 것도 금지했던 교황청이 종교 재판을 재검토한 뒤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갈릴레이의 완전 복권을 선언했던 것이 1992년 10월 31일이라고 한다. 지금은 일반화되고 모든 사람들이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데 35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지동설이 확인되었음에도 인정하는 데 이 많은 시간이 걸렸다면 아직도 새로운 화석이 나오고 있고, 논리적으로 동의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 ‘진화론’을 인정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는 점이다. 최근에 신문지상에 발표되는 ‘DNA 지도’나 바이오 기술 등이 이에 대한 확인을 가속화하겠지만, 내가 네 아들에게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가르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다윈이 주장한 세대를 걸친 ‘변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고, 멘델의 ‘유전의 법칙’이나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우리의 생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 글을 읽으며 단어나 문장의 어려움, 그리고 내가 찬찬히 읽지 못한 불찰로 처음에 가졌던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너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몇 가지 내용은 있을 것 같다.

첫째, 과학을 대하는 자세이다.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특히 과학은 끈기를 요하는 학문이다. 자신이 정한 가설을 증명하고 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찰과 실험 그리고 토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의문점을 풀기 위해 끈기를 가지고 포기하기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둘째, 학문을 대하는 자세이다. 다윈의 자연선택의 이론 뒤에는 다윈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지질학이나 고고학은 물론 경제학까지도 이 개념의 도출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학문을 대함에 있어 자신의 분야 이외에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있어야 자신의 주장을 올바르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세상을 대하는 자세이다. 세상에는 자신과 다른 주장을 펴는 사람이 많다. 누가 옳은지 판단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의 논쟁 이 외에도 매일 TV에서 토론을 하기도 하고, 심하면 파업이나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진리는 항상 진리인 경우도 있지만 시대에 따라 진리가 변화하기도 한다. 이 경우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모든 사람의 주의나 주장을 자세히 들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나름대로의 논리와 배경이 있으므로 잘 들어 보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수용해야 할 것과 거부해야 할 것을 결정해야 한다.

즉, 열린 마음과 균형 있는 판단 기준을 가져야 하는데, 이는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 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경험도 소중한 자산이 된다.
아직은 중학생이라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배우고 자라면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므로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항상 아버지가 이야기 했듯이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는 지식은 평생을 사용할 수 있는 기본 지식이므로 우선은 학업에 충실하는 것이 훗날 어른이 되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될 것 같다. 여름 방학 숙제 하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출발한 일이 너에게 더 혼란을 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2004년 8월 3일 아버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