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서평단] 페미니즘 탐구생활



게일 피트먼의 <페미니즘 탐구생활>(2019, 사계졀),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연보라색의 귀여운 표지의 이 책은 생각보다 많이 두꺼웠고, 진지했고, 많은 내용이 빽빽하게 들어있었다. 최근 많이 발행되는 여느 페미니즘 관련 도서보다 묵직했다. 이 책의 원제는 인데 페미니즘의 시작부터 끝까지 담고 있는 책으로, 역사와 인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총 26개(알파벳 A부터 Z까지)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머리말에서는 순서에 상관없이 읽어도 괜찮다고 나와 있지만, 앞에서 나온 여러 개념들이 뒤와 연결되므로 순차적으로 읽기를 권한다.

미디어의 성 상품화, 사회적인 편견, 데이트 폭력, 성소수자, 성교육, 다이어트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 20장 ‘강한 남자가 멋진 남자라고?’가 인상적이다. 이 장에서는 ‘남자다움에 관한 오해 해체하기’를 이야기한다. 인간이라면 모두 경험하는 분노, 기쁨, 놀람, 혐오, 두려움, 슬픔이라는 6가지 감정 중 두려움과 슬픔은 ‘덜 남자다운’ 것이라 여겨진다. 연구에 다르면 남성들 안에 있는 ‘남성성을 잃을 수 있다’는 위협이 여러 범죄를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했다. 남성적 정체성(또는 그것을 잃게 될 위협)이 강간, 성폭력, 폭력, 성소수자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의 동기가 된다. 여성적인 것(남성적이 아닌 것)을 향해 폭력을 표출하는 것은 자신의 남성다움을 강화하는 강력한 방식이기에 여성, 성소수자에 관련 증오범죄가 가장 높은 비율로 일어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235p

남성다움에 대한 규정이 힘, 권력, 폭력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용기, 자비심, 두려움, 슬픔을 중심으로 하여 ‘진정한 남자’란 모든 사람의 권리를 위해 앞장설 용기가 있는 사람, 어떤 형태의 억압이나 차별 또는 폭력도 참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마지막 장 ‘44’사이즈로 살라고?에서는 재미있는 선언문이 담겨 있다.

뚱땡이 해방 선언 -사라 피시먼과 주디 프리스피릿 작성

우리는 뚱뚱한 사람들이 온전하게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인정받을 자격이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상업적이고 성차별주의적인 이해 추구 때문에 받는 잘못된 처우에 분노한다. 이들은 우리의 몸을 비웃음의 대상으로 만들어 착취해왔고, 이 비웃음을 피할 수 있고 벗어날 수 있다는 거짓된 약속을 판매하여 막대한 이윤을 얻어왔다.
우리는 우리의 투쟁이 계급 착취,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연령 차별주의, 금융 착취, 제국주의 등에서 비롯된 억압에 맞서는 다른 투쟁과 동맹 관계에 있음을 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헌법에 약속되어 있는 권리를 뚱뚱한 사람들도 동등하게 가지게 해 준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공공 영역에서 제공되는 물품과 서비스에 동등하게 접근할 권리를 요구하며 고용, 교육, 공공시설과 의료 서비스에서 우리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른바 ‘감량’ 산업을 우리의 특별한 적이라 규정한다. 여기에는 다이어트 클럽, 체중 감량 시설, 건강 관리 시설, 다이어트 전문의, 다이어트 책, 다이어트 음식과 음식 보충제, 외과 시술, 식욕 억제제, 약물, 랩 같은 도구, 그리고 ‘체중 감량 기구들’이 포함된다. 우리는 그들이 제공하는 것들이 공중 보건에 해롭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그들이 잘못된 주장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신들이 제공하는 제품의 효능에 대해 장기간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입증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체중 감량 프로그램의 99퍼센트가 5년 이상 평가를 해 보면 완전히 실패하며, 급격하고 잦은 체중 감소가 극단적으로 유해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이와 같이 요구하는 바이다.
우리는 우리가 적당하지 않다고 잘못된 주장을 하는 신비화한 ‘과학’을 거부한다. 그것은 보험사, 패션과 의류 산업, 체중 감량 산업, 식물과 약물 산업, 의료계와 정신 의학계 등의 이윤과 공모하여 우리에 대한 차별을 일으키고 유지한다.
우리는 적의 이익에 종속되기를 거부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삶을 둘러싼 힘을 되찾을 것임을 전적으로 밝힌다. 우리는 이 모든 목표를 향해 헌신한다.
294p

페미니즘과 다이어트가 얼마나 큰 연관성이 있는지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가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우람한 체구의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많은 편견과 불이익을 당하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학습해왔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여성들에게 다이어트에 대한 욕망은 생존과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싶은 욕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남녀평등이 일반화되었을 때 여성은 여성 스스로의 모습 그 자체를 사랑할 수 있게 될까?

학교에서 읽혀져야 하는 책이라고 하였지만,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혼자서 술술 읽을 만하지는 않고 선생님 또는 부모님과 한 장씩 공부하면서 읽거나, 고등학교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계기로 많은 페미니스트가 생겨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