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마음의 정치학』 미리 보기 1 : 삼강과 오륜은 다르다!(1~2)

읽기 전에 
삼강과 오륜은 다르다!(1. 삼강오륜, 2. 삼강과 오륜 )




부자·군신·부부·장유·붕우가 지켜야 할 가치를 얘기하는 오륜은 
그 상하 관계 때문에 유교의 보수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1 


본격적인 『맹자孟子』 읽기에 앞서 일종의 시각 교정 단계로 이 대목을 설정하였다. 워낙 오해가 많은 것이 유교인지라 준비가 필요하다고 여겨서다. 오늘날 유교의 대명사는 충효 또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이다. 여기서는 삼강오륜이라는 개념을 분석하여 유교가 단일한 사상이 아니라 그 속에 여러 스펙트럼이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즉 유교라는 이름의 거죽 속에 다양한 켜, 이를테면 공자孔子와 맹자의 ‘원시 유교’와 한당대漢唐代의 ‘제국 유교’, 송대宋代 성리학의 ‘개신 유교’ 등이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런 시각 확대를 전제로, 삼강오륜 사이에 칼을 집어넣어 삼강三綱은 한제국의 이데올로기이며 오륜五倫은 공자와 맹자의 본래 뜻임을 드러낼 것이다. 이 작업은 앞으로 진행할 『맹자』의 주석과 해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고전 번역 가치는 현실성과 창조적 사유”, 〈경향신문〉, 2010년 4월 4일자.





1. 삼강오륜

그동안 삼강오륜은 집 안에서는 여필종부, 부창부수, 삼종지도같은 여성 차별의 가족 윤리로 분화하고, 밖에서는 군사부일체, 멸사봉공, 대의멸친, 상명하복 같은 군주 중심의 정치 윤리로 변주되었다. 이런 다양한 속언과 속담은 ‘충신불사이군, 열녀불경이부忠臣不事二君, 烈女不更二夫’, 즉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취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압축된다. 여기에 가족 안팎을 규율하던 봉건 윤리로서 삼강오륜이 지닌 특징이 요약되어 있다. 

머리맡에 인용한 신문 기사는 ‘유교=삼강오륜’이라는 인식이 오늘날까지 연면히 계승되고 있음을 짧지만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 기사가 서술한 ‘오륜=상하 관계=유교의 보수성’이라는 등식을 평심하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니, 인용문을 꼼꼼히 검토하면 유교를 대단히 후하게 대접한다고 비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교의 보수성이라니? 언제 유교가 진보적인 때가 있었나?’ 하는 심정으로. 가령 ‘부모가 죽으면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해야 한다’는 삼년상 의례의 억압성, 부모가 아플 때 자기 허벅지살을 도려내 먹였다는 효행의 야만성, 남편이 죽으면 그 아내에게 따라 죽기를 강요하던 ‘열녀 만들기’의 비인간성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저 기사는 보수성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그동안 유교가 저지른 갖은 악행과 야만의 역사를 호도한다고 비판할 것이다. 도리어 근대 중국의 문호 노신魯迅이 유교를 두고 “예교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내지른 일갈이 훨씬 솔직해 보일 것이다. 

따라서 연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됐던 것은 유교에 대한 현대 한국인의 속내, 즉 ‘유교=야만’이라는 심중이 솔직하게 드러난 사례라 할 수 있다. 확대 해석하자면 동아시아는 오랜 옛날부터 오늘까지 ‘삼강오륜=유교=야만’이라는 등식에 이를 갈고 침을 뱉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해본다. 삼강오륜은 유교의 대명사로 적절한 표현일까? 삼강오륜의 유교는 어떤 것일까? 아니, 삼강오륜이란 과연 무슨 뜻일까? 이런 질문을 따져보고 분석해볼 이 글을 통해 유교가 단일한 사상이 아니며, 2500년 세월 동안 혁신과 저항, 보수와 진보 등 다양한 굴곡과 침윤을 겪은 ‘사상의 더미’임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또한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유교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삼강과 오륜

유교를 공부하다 보면 삼강오륜만큼이나 자주 대하는 말이 사서삼경四書三經이다(사서삼경은 12세기에 성리학을 체계화한 남송南宋의 주희朱喜가 고른 것이다). 이 가운데 사서四書는 ‘네 권의 책’이라는 뜻으로 『논어論語』·『맹자』·『대학大學』·『중용中庸』을 가리킨다. 또 삼경三經은 ‘세 권의 경전’이라는 뜻으로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을 이른다. 합치면 일곱 권의 책인데 구태여 ‘경’과 ‘서’로 구별한 까닭은 내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자 생전에 교과서로 삼았던 시와 서, 주역을 ‘경’이라 칭하고, 공자 사후 유교의 발전에 따라 편찬된 『논어』 등 네 권의 책은 ‘서’라고 이름 붙인 데서 비롯하였다.

사서삼경이 각기 다른 일곱 권의 책임을 감안하면, 삼강오륜도 서로 다른 여덟 개의 덕목을 일컬어야 할 듯하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삼강을 구성하는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는 오륜의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속에 고스란히 포섭된다. 다시 말해 각기 다른 일곱 권의 책인 사서삼경과 달리, 삼강과 오륜은 여덟이 아니라 다섯 가지 관계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삼강은 ‘세 가지 강’이라는 말이다. 삼강의 첫째는 군위신강君爲臣綱, 둘째는 부위자강父爲子綱, 셋째는 부위부강夫爲婦綱이다. 삼강은 그물을 연상해야 이해가 된다. 삼강에서 공통된 것이 강綱인데 강은 벼리를 뜻한다. 벼리란 어부가 강물에 던져서 그물을 펼치기도 하고, 잡아당겨 오므리기도 하는 외줄이다. 그러니까 그물(網)은 강綱과 목目, 곧 벼릿줄과 그물눈으로 구성된다.2 그물눈에 아무리 고기가 많이 걸렸더라도 벼릿줄에 어부의 생계가 달렸으므로, 벼리는 그물의 주체가 되고 그물눈은 거기 딸린 종속물이다. 곧 강과 목 사이에는 주종 관계가 형성된다.

삼강의 첫 번째는 군위신강이다. ‘군주가 신하의 벼리가 된다’는 뜻이니 곧 임금은 신민의 주인이요, 백성은 군주의 종속물이라는 말이다. 둘째 부위자강은 ‘아비가 자식의 벼리가 된다’는 뜻이니 아비는 집안의 주인이고 자식은 아비의 종이 된다는 뜻이다. 부위부강은 ‘지아비가 지어미의 벼리가 된다’는 뜻이니 가부장제 논리가 형성되는 출발점이 이곳이다. 여기서 여필종부, 삼종지도, 부창부수 같은 봉건적 가족 윤리 담론이 쏟아져 나온다.

반면에 오륜은 ‘다섯 가지 인간관계’라는 뜻이다. 첫째는 부자유친이요, 둘째는 군신유의요, 셋째는 부부유별이며, 넷째는 장유유서, 그리고 다섯째가 붕우유신이다. 부자유친은 부모와 자식 사이를 소통하는 원리가 친밀함(親)이라는 것이요, 군신유의는 군주와 신하 사이를 맺어주는 열쇠가 의義라는 뜻이다. 군신유의에는 불의한 군주를 거부할 권리가 신하에게 허용된다는 점을 특기해야겠다. 셋째 부부유별에는 부부가 서로를 ‘각별히 대해야 한다(別)’는 뜻이 들어 있고, 넷째 장유유서에는 형과 아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가, 다섯째 붕우유신에는 친구와 동료 혹은 거래관계에서는 신뢰가 핵심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오륜의 다섯 가지 관계 가운데 군신·부자·부부 세 요소는 삼강과 곧바로 겹쳐진다. 그렇다면 사서-삼경과 달리 삼강/오륜은 선택적이다. 삼강 아니면 오륜인 것이지 삼강‘과’ 오륜일 수는 없다(이건 간단한 산수다). 따라서 삼강이 바르다면 오륜이 그르고, 오륜이 옳다면 삼강이 틀린 것이다. 요컨대 삼강오륜일 수 없고, 삼강과 오륜은 다르다. 그렇다면 삼강은 무엇이며 오륜은 또 무엇인가!


2 여기서 강목綱目이라는 개념도 파생한다. 강목은 의학서 가운데 『본초강목本草綱目』 또는 실학자 안정복이 저술한 『동사강목東史綱目』이라는 이름으로 낯이 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