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가족] 가느다란 마법사와 아주 착한 타파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아주 유명한 말이다.
내가 <가느다란 마법사와 아주 착한 타파하>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불현듯 생각났던 말이기도 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이름도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로 ‘종이-책-타파하’가 앞으로 아주 착해지지 않을까, ‘먼지뭉치’가 쓸모있는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가느다란 마법사와 아주 착한 타파하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해 한 호흡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아주 고급 말장난으로 이루어진 동화 제목이 궁금증을 유발했다면, 가느다란 마법사가 길을 자주 잃는다는 얘기는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끈기가 있다는 말에 가느다란 마법사라는 인물에 더 몰입하게 된 것 같다.
때로는 크거나 근사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들이 있다. 이 동화에서는 작은 종이가 그랬고, 작은 새가 그랬고, 땅속의 작은 씨앗들이 그랬고, 등교하던 아이들의 온기가 그랬다. 또 지친 가느다란 마법사가 기운을 회복하는 데에도 엄청난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셋째 선생님이 불러준 노래가, 떡갈나무 가지가, 고소한 떡 냄새가 그랬다. 이렇게 아주 작고 소소한 것들이 때로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사실에 크게 공감됐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종이가 조용히 쓴 글이 있다. “모두가 헛되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소망. 내게도 그런 소망이 있었지….” 누구에게나 소망이 있을 것이다. 그 소망은 냄새도 소리도 빛깔도 없지만, 심장처럼 두근거린다. 모양이 여러 가지 이듯 그 모든 소망이 실현 가능하거나 다른 이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다. 어쩌면 나도 종이처럼, 그런 소망을 꿨던 적이 있었기에 서리의 소망이 짠하게 느껴진 것 같다. 언젠가 아지트를 만든다던 할아버지의 손녀를 기다리며 그날의 추억을 품은 물건들을 덮은 방수포를 더 단단히 품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5학년 딸이 말한다. 자기 마음속에 가느다란 씨앗들이 꿈틀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기에 두려움과 같이 엉켜있는 느낌이란다. 그런데 가느다란 마법사와 함께 한 시간들을 통해서 ‘작고 가느다란 무엇’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작은 무엇, 소소한 꿈, 가느다란 소망이 있다면, 작은 솔바람에 실려 가 어떤 쓸모를 찾게 되길 소망한다. 단, 그 작고 소소하고 가느다란 무엇이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