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킹과 잠자리



『킹과 잠자리』
우리는 모두 킹이다

 

글 ✽ 김병성(경성중학교 교사)
 
누구나 다르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그 다름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다른 존재를 만날 수 없다. 내가 나의 존재를 인식할 때도 마찬가지다. 만남의 부재는 사랑의 부재를 불러온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다름을 존중하기 위해 용기 내고,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케이슨 캘린더의 『킹과 잠자리』는 다름을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소설이다.
 
학교는 매일 수백, 수천의 서로 다른 청소년 그리고 그들과 관계 맺는 어른들이 한데 모이는 공간이다. 소설에는 농구를 잘하지만 키가 작아 고민인 남자 청소년 ‘대럴’과 키가 너무 커서 고민인 여자 청소년 ‘브리애나’가 나온다. ‘킹’이나 ‘샌디’처럼 성적 지향이 다른 청소년도 있고, 그런 킹을 짝사랑하는 ‘재스민’도 존재한다. 이들 주변에는 수많은 학교 밖 청소년도 보인다. 한편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의 눈에 청소년은 마냥 미성숙한 존재로 비치곤 한다. 청소년 주변에 있는 어른들은 걱정이 많다. 때론 보호라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청소년의 활동을 제한한다. 특히나 어른들은 청소년의 성性과 사랑에 엄격하다. 어른들은 항상 청소년에게 조금만 더 참으라고 요구한다. 비밀은 되도록 숨겨 두는 게 최선이라 말하며, 청소년의 목소리를 가둔다. 어른들의 사회는 아직 청소년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청소년은 자기 삶을 온전히 지켜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완전한 존재다.
 
킹의 일상에도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어른들이 존재한다. 그의 아버지는 흑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인종차별을 경계하며, 흑인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한다. 칼리드 형은 킹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을 공유하는 가족이다. 그런 칼리드 형도 킹에게 동성애자인 샌디와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칼리드를 비롯한 킹의 가족 중 누구도 악의를 가지고 킹을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성애 중심의 가족 관계는 정상성의 경계를 만들어 내고, 여기에 속하지 못하는 킹에게 의도치 않은 박탈감과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갑작스러운 칼리드 형의 죽음은 킹과 가족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늘 사랑이 넘치던 킹의 엄마는 날로 무기력해지고, 아빠는 킹에게 칼리드를 투영하여 바라본다. 킹은 그런 부모님에게 쉽사리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한다. 킹은 언제나 장난치듯 사랑을 표현하던 칼리드 형의 장례식에서 교회 안을 천천히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발견한다. 순간 킹은 형이 잠자리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킹은 삶과 죽음,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잠자리를 통해 칼리드 형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의 죽음을 천천히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칼리드라는 세계에 갇혀 괴로워한다.
 
이처럼 『킹과 잠자리』는 청소년 성소수자 킹이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과 관련된 주변 인물들의 일상 또한 세심하게 그려 낸다. 그동안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다름을 표현하는 서사는 언제나 현재의 한계와 그로 인한 문제를 드러내고 변화의 지점을 모색해 왔다. 『킹과 잠자리』 또한 성적 지향에 관한 서사를 중심으로 인종 차별과 외모 평가, 청소년 보호주의와 아동 학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가장 일상적인 층위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킹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누구라도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마주하는 인물들의 고민과 심리에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소설의 접근 방식은 독자들에게 대상화된 인권 문제를 오늘날 내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어, 그동안 막연하게 여겨 온 다름에서 비롯된 무지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자신의 정체성을 애써 지운 채 혹은 존재가 지워진 채 살아가던 킹은 뒷마당 텐트에서 다시금 샌디를 만나게 되며, 남다른 ‘나’와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나아가 온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샌디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 목소리를 높인다. 두 청소년의 만남은 루이지애나 작은 마을이 오랫동안 지켜 온 공고한 경계에 균열을 만들어 낸다. 가정에서 킹의 부모는 너를 사랑하기에 동성애와 관련된 무지로부터 벗어나겠다고 선언한다. 그런 아빠에게 킹은 비로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학교에서 재스민은 두려움을 안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힌 킹이 친구들 사이에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그를 받아들인다. 킹과 샌디가 그 존재 자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의 연대가 시작된 것이다.
 
『킹과 잠자리』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삶을 그저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지금도 우리는 모두 킹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동시에 사랑을 원하는 우리는 모두 킹이다. 킹이 자유롭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 때, 그 누구라도 사랑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편견에 균열을 내고, 혐오와 차별에 대항하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이드리스 고모처럼 모든 영혼을 그 자체로 온전히 인정하는 용기를 낸다면, 세상 곳곳에서는 엄청난 사랑이 시작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킹이 마음껏 사랑할 수 있도록, 제도적 불의와 심리적 거부에 대항하는 작지만 큰 연대가 계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