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를 읽고 : 임지예

제2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청소년부 우수상

임지예


 

 

여름날 들판에 있는 소나 말을 보면 늘 꼬리를 움직이고 있다. 파리나 곤충들에 몸에 달라붙는 것을 쫓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곤충들은 해롭고 불필요한 존재이다. 게다간 늘 긴장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면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에서 항시 긴장하고 있으므로 더 큰 재앙을 막을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곤충의 일부인 ‘등에’를 자신에 비유하고 있다. 혈통도 좋고 큰 말일수록 몸집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보통보다 둔한 데가 있어 늘 눈을 뜨고 있으려면 등에 같은 벌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신이 아테네라는 큰 말에 보낸 등에’라 자칭한다. 즉, 자신의 소명은 아테네 시민들의 눈을 뜨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 셈이다. 아테네가 스스로의 병폐를 느끼도록 알려 주고 자극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소크라테스는 ‘자신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신탁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자라고 소문난 정치가, 시인, 장인들을 찾아가 대화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들이 스스로를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혜롭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 줌으로서 그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고발당한다.

아테네의 멜레토스는 이런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우고 만다. 죄목은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멋지게 논박하여 무죄임을 변명하는데, 그 논리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매혹시켰다. 

‘내가 만약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면 그 사람들이 나를 고발해야 하는데 오히려 나를 도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정령의 힘을 믿고 있으며 정령 또한 믿는다. 그런데 정령은 신 또는 신의 아들 아니냐. 그러므로 나는 신을 믿는 것이다.’라는 논리로 고발자 멜레토스가 할 말을 잃게 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논리의 힘인가? 하지만 이 논리 속에는 진실이 들어 있기 때문에 더 위력을 발휘한다고 본다. 멜레토스의 말 속에는 진실이 아닌 중상모략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에 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아주 겸손하다. 최대한 자기 자신을 낮추며 논리가 부드럽다. 그러면서도 아테네 시민들이 강하게 공감할 수 있는 설득력을 펴는 재주도 가졌다. 고발자조차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크라테스의 논리 속으로 걸려든다. 마치 유도심문에 말려드는 느낌이다. 그러나 말 위에 앉은 ‘등에’를 쫒지 않으면 불안하듯 시기하는 무리로 이루어진 고발자와 야합한 힘은 소크라테스를 유죄 판결로 내몬다. 소크라테스의 진실이 돋보이면 돋보일수록 더욱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피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악함을 피하기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는 멋진 말을 남긴다. 요즘같이 부조리로 얼룩진 사회에 얼마나 듣고 싶은 말인가?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앞두고 ‘존재하는 것은 늘 존재한다.’는 말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정의로운 스승이자 성인으로 남고자 했다. ‘착한 사람에게는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뒤에나 나쁜 일은 하나도 없으며, 그 사람은 무엇을 하더라도 신의 배려를 받지 않는 일이 없다.’는 진리로 선하게 살기를 권하고 간 철학자이자 성인이다. 

나는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소크라테스는 이 시대에 깨어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등에’가 될 것이라고, 나 또한 힘든 상황이 오면 나 자신의 신변을 위해 굴복하기 보다는 ‘진실과 정의는 불변이다.’는 확신으로 행동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