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동안은 모두가 어린아이일 뿐이다 : 조미형

 
제1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일반부 우수상
조미형

 
 
햇살 보기가 처녀 속살 보기만 할까. 무수히 많은 날들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집 앞 공원 앵화나무 푸른 잎들이 노랗게 물들고, 뱅글뱅글 맴을 돌아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은 어느덧 저만치 빗물과 함께 흘러가고 가을이 다가와 몸을 풀고 있다.

잎이 지기 시작한 첫날 아침 조간신문에 실린 기사는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십년 간 양딸을 괴롭혀 온 사내는 사회의 지식층으로 존경받아 왔다. 누구도 그에게 거칠고 야수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지도 않았다. 다만 어린 아이가 혼자 아파하고 참아 온 시간들이 영겁의 시간처럼 무거울 것이라는 것에 가슴이 아팠다. 신문 기사를 읽은 그날 오후 책 한 권을 받았다. 계절이 바뀌듯 이 한 권의 책은 내 인생에서 내가 나아갈 앞으로의 시간에서 선명한 길잡이가 되었다.

『위험한 하늘』이라는 책은 작가도 제목도 생경했지만, 표지의 붉은색들만은 눈 속으로 가득 박혔다. 전쟁의 참혹상을 그린 내용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섣부른 예상과 달리 잔잔한 호수의 잔물결처럼 속살대는 이야기들이 페이지마다 넘실거렸다.

활달하고 유쾌한 성격에 낚시를 좋아하고, 만에서 바람처럼 헤엄치기를 즐겨하며, 숲 속을 달려 도토리를 줍고, 여우를 쫓아가는 열세 살의 소년을 먼저 만났다. 버크 옆에는 언제나 튠이 함께한다. 쉼 없이 오가는 파도에 바다의 깊은 물빛을 품은 동돌처럼 단단하고 빛을 내는 소녀 튠은 자연과 하나 된 바람과 숲의 정령 같은 이미지로 나에게 다가왔다.

너무나 고와 지상의 존재로 믿기에 시기심 많은 인간의 이기로 꺾어 버리고 싶도록 눈부신 존재! 튠의 말간 눈동자로 보고 듣고 만나는 모든 책 속의 인물들을 향해 나는 함께 따라갔다.

“불쌍한 고아 같으니라고.” 말하며 튠에게 호두빵을 만들어 주고, 교회 바자회에서 얻어 온 천으로 레이스 달린 옷을 만들어 주던 버크의 어머니, 아들 버크의 안전을 위해서 튠을 밀어내던 어머니의 이중적인 모습.

이 책 속에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는 여러 사람이 나온다. 그 중에서 가장 악랄한 사람은 튠을 성폭행하고 협박해 온 점보, “학생이 쓴 거라고 믿을 수 없어요. 베낀 거예요.”라고 한 티몬스 선생, 권력이 주는 단물에 흠뻑 빠져 허우적거리는 보안관, 폭력에 길들어져 거짓 증언을 하는 멕시코 노동자와, 진실에 눈 돌리고 권력에 타협하며 보고도 보지 않은 듯 들어도 듣지 않은 듯 행동하는 마을 주민들, 명석하고 공정하나 육체의 힘이 다해 가는 죽음을 앞둔 위캄 판사.

『위험한 하늘』은 바로 어른들이 만들어 낸 하늘 아래,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리고 그 아픔으로 성장하는 버크와 튠이 겪는 혼란과 눈물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나는 버크와 튠과 오비를 사랑한다. 그 중에서도 오비가 점보의 다리를 꽉 물고 놓지 않았을 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잘했어! 오비. 놓지 마! 놓지 마! 더 세게 물어 버려!'

내 목소리에 스스로 놀라 한동안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창 밖의 이방인들처럼 행동하는 마을 사람들은 나를 분노하게 했다. 감정의 지나침은 사실을 왜곡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보게 한다는 것을 실감한 것은 튠의 출생에서였다. 책의 절반을 읽어 갔을 때 비로소 나는 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제야 내 마음속에 튠은 열세 살 소녀로, 상처받고 슬픔에 분노밖에 남지 않은 소녀로 보였다. 튠은 절규하듯 말했다.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악은 그저 악일 뿐이야. …… 악이 너를 죽이기 전에 먼저 악을 해치워야 하는 거지!”

위험한 하늘 아래에서 악의 존재는 무엇인가? 인간의 마지막 구원의 존재라고까지 하는 희생과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끝까지 타협하지도, 좌절하지도 않는 튠의 당당함에서 그 희망을 보았다. 조금의 편함에, 조금의 배부름에 타협하지 않는 참다운 용기를 첫 장에서부터 예감한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보아 온 튠의 까만 눈동자에서 발견했다.

뜻하지 않은 조지 아저씨의 죽음에 살인자로 몰려 원하지 않은 혼란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되었지만, 튠은 강하게 버티었다. 나의 열세 살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배낭 메고 산을 찾아 종주를 하고 야영을 하면서 나는, 집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막걸리 잔을 벌컥 들이켜고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빗줄기 굵어져, 하산 경보가 내려졌어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소나무 아래 우산을 펴고 코펠에 끓인 커피를 마시면서 낙엽 냄새와 커피 향에 취하여 시 한 편이 입술 사이로 줄줄 나오는 꿈만을 먹었지, 현실은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님이 하신 말씀에 나는 다시 한 번 좌절하고 말았다. 같이 간 친구의 꾐에 빠져서 착한 딸이 변했다고. 그 후로 오랫동안 부모님의 그 한마디로 인해 나는 더 많은 방황과 갈등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십대라는 시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임이 분명하다. 서른의 중반,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한 나에게 이 책은 재미와 흥미보다 경건한 마음까지 불러일으켰다.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고 그 속에서 꿈을 만들어 가는 열세 살! 외줄 위에 올라탄 미숙한 서커스 단원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스스로 무너지는 이가 있고, 자신의 길을 고단하나 받아들이고 찾아가는 이도 있고, 현실을 외면하고 그 속에 안주해 버리는 이도 있다. 그러면서 배낭 속에서 하나하나 짐을 내려놓듯 꿈을 내려놓고 일상이 주는 반복됨에 타협하고 길들여져 가면서 사회의 틀 속에 한 자리를 찾고 뿌리를 내리게 된다. 한 살의 나이를 더하여 성장한다는 것은 직선만이 아닌, 얽히고설킨 많은 선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옳다고 한 행동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질시를 받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할까? 버크는 아버지로부터 가장 큰 배신감을 받았다. 그리고 튠으로부터 믿음을 저버렸다는 원망을 들었다. 버크의 혼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재판이 시작되고, 끝도 없이 반복되는 질문과 자신의 입장에서만 질문하고 원하는 대답만을 강요하는 재판을 하면서 버크는 조금씩 변해 간다.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법을 알게 된다. 내가 이십대를 지나서야 깨우쳤던 교훈을 버크는 십대를 지나면서 깨닫게 되는 순간 나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지나가 버린 시간이 되돌아오지 않듯 튠과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버크는 받아들였다.

나는 버크에게 말했다.
‘은빛을 반사하는 청어 떼가 있고, 송어 낚시에 웃으며 손을 흔들 수 있다면, 버크 넌 멋진 청년으로, 진정 용기 있는 어른으로 인생을 펼쳐 나갈 수 있어.’

맑은 하늘 아래 먹구름이 소리 없이 내리덮더니 후둑후둑 빗방울이 떨어지고, 천둥 번개까지 합세를 했다. 까르르 숨넘어가듯 웃으며 뛰어오는 두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위험한 하늘을 거두고, 새파란 하늘을 저 아이들에게 넘겨주기 위해 많이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자식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 편견어린 시선이 내 속에 뿌리내리지 않게 따가운 채찍이 되어 준 ‘위험한 하늘'은 두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가장 좋은 벗이며 스승이 되어 줄 것이라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