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사고를 깨우는 논리 실험실

세상은 온통 가득 차 있다. 가을비 내리는 아침에 창문을 열면 온통 습기와 뽀얀 빛이 휘돈다. 거리에는 자동차가 가득하고, 학교에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가득하고, 우주에는 별이 가득하다. 하느님은 세상에 은총을 가득 뿌려 주시고, 부처님은 마음속에 공(空)을 채워 주신다. 교과서에는 글자가 가득하고, 우리들 머릿속엔 출처를 알기 힘든 ‘생각들’이 가득하다.
세계는 ‘나’와 상관없이도 모든 것이 맞물려서 스스로 행진한다. ‘나’는 그 세계의 일부이면서도 정작 세계를 잘 알지 못한다. 아라비아의 청년들이 프랑스에 갔다가 본국으로 돌아갈 때 가장 갖고 싶어한 것이 수도꼭지였다나? 아라비아에 가져가면 거기서도 실컷 목욕을 할 수 있게 해줄 것 같은 그 수도꼭지는 바로 우리들의 일상생활일지도 모른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기까지 그 뒤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만 집착하기 마련이다. 왜 이런 세상에서 살게 되었는지, 왜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알지 못하고 저절로 사는 삶은 괴로움의 연속이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현상들을 헤치고 원리와 법칙을 알아내면,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를 찾을 수 있다. 마음은 평화롭고 건강한 참여가 시작된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이성은 언제나 깨어 있지 않다. 캄캄한 밤에 정전이 되면 사물을 분간하기 어렵고 두려움이 몰려오며 당황하게 된다. 이성의 회로에 고장이 생기면 언제든지 논리적 정전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논리적 오류다. 어떤 사람이 억지를 쓰고 있다고 느낄 때,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나에게 벌어지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신해야 하는지 당황스럽다. 비단 다른 사람에 대해서뿐만이 아니다. 내 마음속의 상념들에 대해, 자연 세계의 변화에 대해, 세상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에 대해 똑 같은 괴로움을 느낀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한 쾌에 꿰뚫어,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기를 우리는 바라고 또 바란다. 그래서 논리는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더 큰 힘을 주고, 억지보다는 이성으로 갈등보다는 상호존중으로 사회를 만드는 힘이 된다.
 

『비판적 사고를 깨우는 논리 이야기』는 정신의 힘을 기르는 방법을 재미있게 안내하는 탁월한 ‘이야기’ 책이다. 책에 나오는 ‘달래’, ‘바우’, ‘선생님’은 세상에 가득찬 모든 것을 가지고 실험한다. 학교의 과학 실험실에서 경험하는 정해진 실험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모든 지식에 대한 무제한의 실험이다. 실험에 사용된 주재료는 무엇일까? 우리가 어릴 적부터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동화, 우화, 민담에서부터 신문기사, 소설, 영화, 성경, 신화, 교과서, 명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이다. 우리 머릿속 전체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느낌이다.
달래, 바우, 선생님은 끊임없이 대화한다. 선생님은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훈계하지 않는다. 달래와 바우는 언제든지 선생님의 생각에 토를 달고, 이의를 제기하고, 또다른 가능성은 없는지 탐색한다. 그리고 새로운 궁금증을 스스로 일상생활에 적용한다. 두 학생들이 보여주는 ‘철학적 총명함’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기특하다. 선생님은 매우 친절하고 유쾌한 분이다. ‘유머’와 ‘비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사랑’과 ‘감정’의 소중함을 논리의 잣대로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의 영역과 문학 또는 예술의 영역을 조화시킨다. 선생님과의 대화에 빠져들다 보면 논리적 사고가 과학과 인문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의 뼈대임을 아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선생님은 이 책을 읽는 ‘모든 달래들’과 ‘모든 바우들’이 어느덧 논리의 규칙을 이해하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데 능숙한 훌륭한 여행가이드이다.
혹자는 궁금할 것이다. 왜 비판적 사고가 중요할까. 비판은 남을 헐뜯는 부정적 사고가 아니다.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는 다시 들여다보고 검토해 보는 긍정적 사고이다. 수도꼭지 같은 일상의 체험과 지식들을 꼼꼼하게 되짚어 보면, 흘려 보냈던 원리와 모순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계단이 닳은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기에 원자론을 주장할 수 있었던 데모크리토스, 손가락이 풀잎에 베이자 그 풀잎을 연구하여 톱을 만들었던 노반 등은 바로 비판적 사고가 창의적 사고의 원천임을 보여 준다. ‘왜’를 묻고 궁금해하는 이성의 소리를 끝까지 따라가 보자. 우리들을 그 모험의 길로 안내해 줄 지팡이는 ‘논리’이고, 이 책은 유쾌한 모험의 믿음직한 지도(Map)가 될 것이다.
 
 
글 · 권희정 (상명사대 부속여고 철학 교사)
 
 
1318북리뷰 200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