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골 미륵이』를 읽고 : 은종복

제4회 독서감상문 대회 일반부 우수상
은종복


 
이 작품은 여우의 울음소리로 시작된다. 우우 하는 여우의 울음은 고달픈 한민족의 운명을 나타내는 것일까. 조용한 산골 마을. 여우가 많이 살아 야시골이라고 부르는 마을에 불어닥친 회오리바람. 해방 후 좌우 이념의 대립으로 미륵이뿐 아니라 그 마을 전체는 피의 살육장으로 변한다.

해방이 되었지만 순전히 우리 힘으로 이루지 않은 해방은 조국의 슬픈 운명을 낳는다. 친일 세력들은 해방 후 잠시 주춤하며 몸을 피하지만 신탁 통치를 기점으로 민족 세력으로 둔갑하여 미군을 등에 업고 진보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인다. 배고프고 헐벗은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이루겠다는 사람들도 이에 맞서 피의 보복을 한다. 이 땅은 같은 민족끼리 싸우고 죽이는 동족 상잔의 비극을 낳는다.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미국과 소련의 이권다툼으로 삼팔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리는 슬픈 운명을 맞는다. 그 통한의 세월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 이념의 장벽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라졌나.

『야시골 미륵이』는 빨갱이와 토벌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친일 세력과 민족 세력의 다툼을 애달프게 그린 작품이다. 어른들 싸움에 코흘리개 주인공 미륵의 처절하고 비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마저 잃게 되는 슬픈 일을 당한다. 이 작품의 백미는 아마도 미륵이를 잠시 미워했던 영대가 다시 미륵이와 화해하는 장면일 것이다. 어린아이의 천진함으로 그들은 다시 친구 관계가 된다. 어른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념이 목숨보다 더 소중한가. 아무리 미워도 목숨까지 빼앗아서는 안 된다.

『야시골 미륵이』는 지금부터 50년 전의 이야기이다. 순전히 우리 힘으로 이루어 낸 해방이 아닌 외세의 힘을 빌려서 이루어진 해방은 또다른 식민지의 삶을 예고한다.

야시골 미륵이. 그의 아버지는 사회주의자다.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것이 미륵이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시작이 되었다. 미국을 등에 업은 친일 세력들은 미륵이 가족을 빨갱이로 몬다. 미륵이 할아버지는 모진 고문으로 죽고, 미륵의 동생은 네 살이 되어서 죽는다. 먹을 것이 없어 죽은 쥐를 먹고 나서 열병으로 죽은 것이다. 이 얼마나 비참한 삶인가. 열두 살의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결국 미륵의 식구들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 여우가 사는 토굴로 몸을 피한다. 하지만 그 토굴도 안전한 쉼터가 되지 못한다. 빨갱이를 잡겠다는 토벌대에 쫓겨 그곳마저 등지고 도시 빈민의 삶으로 떨어진다.

미륵이의 가혹한 삶은 지금도 여전히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이 해방 후 50년이 넘은 지금도 살아 있어 수많은 진보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철창 속으로 가두어 놓는다. 빨갱이 사냥은 지금도 계속된다.

미륵이의 삶은 그대로 우리들의 삶이다. 아직도 이 땅에는 수많은 미륵이가 존재한다. 국가 권력에 핍박받는 모든 사람들은 다 미륵이다.

이제 우리가 미륵이의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미륵이를 이해하고 보듬는 미륵의 친구 영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외세를 몰아 내고 진정 해방된 조국을 맞아야 한다.

 
2004년 2월 14일 성대 앞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