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가족] 존엄을 외쳐요

얼마 전까지 아이들과 [박씨부인전]을 천천히 깊게 읽고 있었다. 못난 외모로 인해 박씨부인이 구박을 받는 대목을 읽으며 ‘세계인권선언’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내용이 11살 아이들에게 딱딱하고 어렵게만 다가왔다. 물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누리집에는 쉽게 풀어 쓴 세계인권선언문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세계인권선언 전문 중 2조]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더 나아가 개인이 속한 국가 또는 영토가 독립국, 신탁통치지역, 비자치지역이거나 또는 주권에 대한 여타의 제약을 받느냐에 관계없이, 그 국가 또는 영토의 정치적, 법적 또는 국제적 지위에 근거하여 차별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존엄을 외쳐요 중 2조]
피부색이 달라도, 성별이 달라도, 종교, 언어, 국적이 달라도 가난하건 부자건, 지위나 신념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차별받지 않아야 해요.

[세계인권선언 전문]과 [존엄을 외쳐요] 중 같은 조항을 하나 골라 비교해보았다. 어른인 나도 30조의 전문을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았다. 언어는 정제되어 있었지만 마음을 흔들지는 못했다. [존엄을 외쳐요]에는 같은 내용이 이해하기 쉽게 표현되어 있었고 아름다운 색감으로 내용을 잘 보여주는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다. 매력적이었다.

그렇다. 양차 대전과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참혹한 사건을 겪으며 몸과 마음을 다친 인류가 머리를 맞대고 만든 이 선언.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은 그 어떤 이유로도 훼손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새하얀 백지 위에 정제된 언어로 보편적 인권에 대해 쓰고 있는 사람을 상상한다. 그 최초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세계인권선언에 담긴 생각들과 그것을 함께 만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매력적이었다.

[존엄을 외쳐요]는 2021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국제앰네스티 창립 60주년을 맞아 윤예지작가와 협업하여 대중에게 ‘세계인권선언’을 알리고자 기획한 프로젝트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인권선언을 알고 있을텐데 이 책의 기획자는 왜 대중에게 알려야한다고 생각했을까? 인권의 존엄함에 대한 이 선언을 끝까지 제대로 읽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존엄을 외쳐요]를 읽으며 찾아낸 연관 도서들도 함께 소개한다. 이부록, 조효제, 안지미가 함께 만든 [세계인권선언](프롬나드, 2012), 엠마 스트라크가 쓰고 마리아 프라드가 그리고 김휘택이 옮긴 [세상 모든 차별-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 위해](걸음, 2020)다. 존엄을 외치는 것은 곧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