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공동기획 평화그림책 시리즈 작업일기 : 기록과 공감, 그리고 희망의 연대

여섯 해 전의 일이다. 2005년 10월, 그림책『강아지똥』의 작가 정승각 선생에게 일본의 그림책 작가 네 분이 함께 쓴 편지가 왔다. "한국의 그림책 작가 여러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로 시작한 이 편지는, 근대 일본의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죄와 피해 배상이 없음을 부끄러워하면서 한·중·일 3국의 그림책 작가들이 함께 어린이들에게 평화의 의미와 가치를 전하는 ‘평화그림책’을 만들어 공동 출판하자고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6년 8월, 서울에서 우선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작가 모임이 이루어졌다. 이것이‘평화그림책’의 시작이었다.
 
『꽃할머니』스케치

 작가들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이 일을 이루어갈까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다가 2007년 중국의 작가들이 결합하게 되었고, 출판을 담당할 세 나라의 출판사들이 정해졌다. 이어서 그해 10월, 중국 난징에서 세 나라의 작가 12명과 편집자들이 모여 첫 기획회의를 열었다. 신기하게도 마치 오랫동안 헤어져있던 친구들이 다시 만난 것처럼 금세 친해져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지, 왜 그런 작품을 구상했는지 등 그림책을 만드는 일에 관한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세 나라 사이의 과거 역사에 대한 이야기, 평화에 대한 생각과 전쟁과 관련한 각자의 경험, 어린이에 대한 생각, 예술에 대한 생각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사흘낮밤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기록과 공감, 그리고 희망의 연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설정했다. 그림책으로 과거의 역사를 정직하게 기록하고, 현재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힘을 합치자는 뜻이었다.
 
 『와카야마』스케치

 그 뒤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은 그러한 뜻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의논하며 열심히 그림책을 만들어 오고 있는데, 그 첫 결실이 2010년 5월과 6월에 각각 출판된 권윤덕 작가의『꽃할머니』와 이억배 작가의『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이다.

좋은 뜻과 순수한 열정으로 의기투합하여 시작한 기획이었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역사도 다르고 문화도 정서도 정치 체제도 다르니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많았다. 가령, 우리나라의 김환영 작가가 권정생 선생님의「애국자가 없는 나라」라는 시를 그림책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중국의 작가들이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 체제 속에 사는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무정부주의적인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담은『꽃할머니』에 대해서는 일본 출판사가 적잖은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일본 내 보수주의 세력의 반발이 걱정되었던 탓이다. 그밖에도 유일한 분단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비무장지대’라는 개념을 일본과 중국의 어린이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반대로 중국의 전통문화인 ‘경극’을 다룬 작품 또한 우리나라와 일본의 어린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동경에서 『꽃할머니』를 모니터하다.
 
 
난징 기획회의 때 찍은 기념 사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 모든 문제들을 의논하는 수단인 언어가 제각기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끼리는 일상생활의 의사소통도 잘하기가 어려운데, 무겁고 때로는 매우 민감한 사안들을 놓고 깊이 있는 논의를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세 나라 어린이들과 다함께 평화를 이야기하자는 큰 뜻과 열정이 어려움을 이겨 내고 한 권 한 권 결실을 보게 하는 듯하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 자체가 바로 평화그림책을 만드는 의미이자 보람이 아닌가도 싶다. 예컨대, 여러 가지 고비를 넘기고『꽃할머니』가 출간되어 이야기의 주인공인 심달연 할머니께 이 책을 헌정하는 행사가 열렸을 때 일본의 작가 한 분이 행사장인 대구까지 찾아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할머니가 겪었을 고통을 깊이 공감하며 자신의 나라가 저지른 일을 사죄한 것이다. 평화는 이런 마음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일 터이다.

올봄이면 두 권의 평화그림책이 또 출간된다. 이번에는 일본과 중국의 작품들이다. 이렇게 한 권 한 권 보태어져 열두 권의 평화그림책이 모두 출간되고 세 나라 어린이들에게 전해질 날을 기대해 본다. 그러면 세상은 아주 조금이나마 더 평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_김장성(그림책팀 자문)

사계절 즐거운 책 읽기 2011년 봄호